당시 현역 근무 기간이 30개월인 것에 비해 방위는 18개월이었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군 복무를 하는 와중에도 돈 걱정은 떨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말을 잘하는 은사가 있었다.
돈을 벌 방법을 고민하다 나는 동네 사모님을 대상으로 골프 레슨을 하기로 했다. 먼저 골프에 관심을 보이는 사모님을 모집했다. 사장님은 바쁘니 사모님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금방 20명을 모았다. 대신 레슨비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1인당 5만원만 받았다. 아침 7시에 부대에서 교대 근무를 마치면 곧바로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레슨은 9시에 시작하니 그 전에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면 시간이 딱 맞았다. 나는 레슨을 할 때마다 숙제를 내주고 하루 걸러서 만났다.
레슨 인원이 많다 보니 순식간에 100만원이라는 돈이 주머니에 들어왔다. 나는 레슨비를 선지급제로 받았는데 사모님들은 나를 무한 신뢰했다. 군인이 어디로 도망갈 수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월초에 100만원을 받으면 절반을 뗀 50만원을 아버지께 용돈으로 드렸다. 갑자기 출처 모를 돈을 받은 아버지는 놀라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셨다. “야, 너 요즘 부대에서 뭐 하고 다니냐. 너 무기 파냐. 도대체 무슨 일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어디 나쁜 일이라도 하는 거 아니냐. 방위병이 이렇게 큰돈을 어디서 번다냐잉.”
나중에 소문이 퍼져 모든 동네 사람이 알게 됐고, 군인이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처음이라며 칭찬했다. 완도에서 자라며 생존력이 강해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배운 인생의 지혜는 거리감과 속도감이었다. 이는 골프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군 생활은 초반 해프닝을 제외하고는 평탄했다. 근무 시간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집중하고 오후에 일이 없을 때는 연습에 집중했다. 레슨도 꾸준히 하고 아버지 용돈도 드리다 보니 집안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군복도 항상 단정히 입었다.
시간이 흘러 소집 해제 날이 다가왔다.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전역 후 서울로 올라갔다. 친구들과 골프 연습할 곳을 찾다가 충남 서산에 있는 연습장을 발견했다. 하루에 8명 밖에 없는 곳이었기에 한산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떨어진 폼을 끌어올리는 데 힘썼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나를 유심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프로님, 내가 전에 본 프로들이랑 스윙부터 다르네요. 동네에서 볼 좀 치는 지인 불러서 테스트라도 한 번 해보실래요.”
나는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다음 날 라운딩을 나갔는데 차 안에서 손님과 친구들은 자기 자랑을 하기 바빴다. 그들에게 곧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