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과 북한·러시아의 밀착,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한국 정치의 혼돈으로 올해 한반도 안보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2018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북·미 정상회담 실무를 담당한 랜들 슈라이버 전 국방부 인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국민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의 일류 동맹국(first tier ally)”이라며 “한·미동맹은 여러 정당과 정파를 거치면서도 매우 견고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슈라이버 전 차관보는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회담에 나설 경우 한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렇게 된다면) 큰 실수(Big mistake)가 될 것”이라며 “미국은 한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계엄·탄핵 사태가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가 아는 건 한·미동맹이 수십년 동안 한국과 미국의 여러 정당, 정파를 거치면서 매우 견고하다는 게 입증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얼마나 빨리 계엄령을 거부했는지, 그리고 국회의원이 군인들을 밀어내고 들어가서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는 투표를 하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이것이 제도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한국을 ‘머니머신’이라 부르며 방위비를 9배 가까이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개를 결정할지 모르겠지만 (재개한다면) 그건 협상의 문제일 것이다. 한국은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매우 높다. 역사적으로도 미군 지원에 매우 관대했다. 또 한국은 미국 군사장비의 주요 구매국이고 미국의 주요 투자국이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차기 행정부에 (한국이) 이런 부분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1기 때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2기에도 그런 시도가 있을 수 있을까.
“트럼프가 첫 임기 때 그 발언을 했을 때도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협상에서 지렛대를 얻기 위한 움직임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에) 의회가 동의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미국 대선 기간 조현동 주미대사를 만났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나는 한·미가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항상 굳건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고, 한국이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 차기 행정부에서도 강조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한국이 정말 일류 동맹국이라는 것을 강조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사례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행동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을 전달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다시 톱다운 방식의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김정은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트럼프도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만약 그들이 지도자급에서 관여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2019년 하노이 회담 때 중단된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미국과 북한이 정상 차원에서 다시 관여한다면 그 대화가 비핵화뿐만 아니라 안보에 대해 더 광범위하게 이야기하고 북한의 재래식 능력과 한국을 향한 위협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은 북한군을 러시아에 파병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밀착하고 있다.
“만약 (북·미) 회담이 성사된다면 김정은은 트럼프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다른 수준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러시아라는 강력한 동맹을 갖게 됨에 따라 이 시점에서 김정은은 2019년에 비해 자신감과 위상, 힘을 얻고 있다고 본다.”
-북·미 협상이 한국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남북 관계가 교착 상태여서 한국이 패싱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게 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트럼프 1기 때 한국 정부도 북한과 관여하고 있었다. 한·미 둘 다 북한에 관여하고 있었음에도 때로는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이 다시 북한과 관여에 나선다면 한국도 매우 긴밀하게 집중하길 바란다.”
-북한이 핵무기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한국에서 독자적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면 더 안전할까, 덜 안전할까 분석하는 건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 조치는 일본도 핵무장을 하도록 할 수 있다. 한국이 독자적 핵 능력이 필요하다고 결정하고 일본도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미국이 확장억제에 대한 충분한 신뢰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 된다. 미국인으로서 나는 한국이 미국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끼는 그런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떻게 균형 잡을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 입장을 강화할 것이다. 관세부터 수출통제, 투자 제한 등 주로 경제 분야가 될 것이다. 중국의 역량이 커지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현상 유지를 위협하는 행동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제법을 중시하고 평화적 분쟁 해결에 관심을 갖는 한국이 (미·중 사이)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미국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워싱턴=글·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