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0일 이후 처음 보는 정부의 태도와 조치였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채 미적거리고, 염장까지 지르던 행태가 ‘조금’ 사라졌다. 소방 경찰만 동분서주하며 피해자 가족들의 비난을 감내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항공 추락 참사가 발생하자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주무 부처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심지어 별 관계도 없어 보이는 부처까지 입장을 냈다. 관료들의 말과 행동도 달라졌다.
같은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참사 발생 하루가 지나지 않아 국가애도기간이 지정되고,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됐다. 헌법 제7조 1항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당연한 책무를 이제라도 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다. 이번 정부에서 ‘처음 해보는 일’이니 서툴 수 있다. 초기부터 있던 정부 주요 인사들이 사퇴하거나 직무가 정지되면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면 과언일까.
물론 제대로 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세월호 이태원 오송 참사’에서 보여줬던 행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올해 5월 열린 ‘재난·참사 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한 정책제안 토론회’에서 나온 당사자들의 호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는지, 구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대책이 있는지 관료와 정치인에게 하는 것보다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는 호소였다. 필요한 지원을 적시에 제공하고, 수습·진상조사 과정에서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 편의적 대처, 통합지원센터 운영이나 피해자·유가족 원스톱 지원 서비스 제공과 보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피해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원인과 책임 규명도 필요하다. 이제껏 발생한 여러 참사에서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있기는 한가.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2022년 9월 발간한 두 권의 종합보고서는 공통으로 정부의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본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사후 대처는 위험을 막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무능하고 소극적이지만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를 괴롭히는 데는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부와 여당은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비극을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고 억누르려고만 했다. 의혹도 해소하지 못했다. 그렇게 남은 억울함은 결국 정부·여당을 무너뜨리는 계기 중 하나로 작용했다.
사회적 참사는 사회 구조의 부재, 부실 등으로 발생한다. 원인과 책임이 대체로 기업과 정부에 있다. 건물과 다리 붕괴, 화재 등과 같은 한정적인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는 재난이나 사고만 사회적 참사가 아니다. 국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 전부를 사회적 참사로 규정해야 한다. ‘4·3, 4·19, 10·26, 5·18’은 모두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줬다. 의혹은 남았고, 책임자는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투사’가 됐다.
우리는 광복 이후 발생한 사회적 참사를 제대로 처리해 본 적이 없다. 덮기에 급급했고, 꼬리 자르는 처벌로 무마했다. 어렵게 책임을 묻더라도 정치적 화해를 이유로 사면해주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나치 전범들은 아직도 처벌받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원인을 규명해 조그마한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원인 제공자는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의혹이 적어지고, 책임이 확인돼야 치유가 시작된다. 그래야 한(恨) 맺힌 투사가 생기지 않는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