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독 스포츠 분야에 공정과 윤리 문제가 부각됐다. 안세영 선수가 금메달을 딴 후 던진 폭탄 발언은 기존 관행을 끊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3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4선 도전에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지난해 1월 스포츠윤리센터에 부임한 박지영 이사장은 아티스틱 스위밍 대표 선수 출신이다. 센터 출범 이후 첫 번째 스포츠인 출신 이사장이다. 그는 오랜 기간 해설자와 국제심판 활동도 했다. 대한수영연맹 부회장 시절엔 물품 관련 문제를 제기했다가 송사에 휘말린 적도 있다. 스포츠인 출신으로 경기 내·외적으로 많은 경험을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서울 마포구 스포츠윤리센터 사무실에서 박 이사장을 만나 한국 스포츠의 공정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난 사람=김준엽 문화체육부장
-스포츠윤리센터에 대해 설명해달라.
“국민체육진흥법에 의해서 2020년 8월에 출범했다. 체육인의 공정성 확보 및 인권 보호를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단법인이다. 체육계 전반의 인권 침해 및 비리 사안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를 하고 후속 조치를 한다.”
-징계를 강제할 수 없어서 실제로 징계까지 이어지는 건 40% 미만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은 있나.
“체육단체의 조치 결과에 대해 윤리센터가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윤리센터에서 징계를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시 징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징계 요구 시 중징계와 경징계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전반적으로 윤리센터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계속 법을 개정하고 있다.”
-스포츠인 출신으로는 첫 이사장이시다.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일은.
“스포츠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윤리센터가 징계를 요구하는 기관이기보다 체육인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징계 전에 중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번 징계를 받으면 주홍 글씨가 돼서 현장으로 돌아가기 힘든 면이 있다. 때문에 가능한 경우에는 중재 기능을 강화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올해 유난히 스포츠 분야에서 공정과 윤리 문제가 부각된 거 같다.
“지난해 11월 30일 기준으로 윤리센터 접수 사건 비중이 인권 44%, 비리 56%다. 결국 스포츠 행정이 잘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행정이 개선돼야 인권침해 문제 등도 개선될 수 있다. 체육단체장 선거에 대해선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IOC에선 윤리위원회가 선거법을 개정한다. 바흐 위원장도 연임 규정을 바꾸면 다시 연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 체육계에서도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여도 규정과 절차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관행이 그랬다는 이유로 규정과 절차를 지키지 않아서 비판이 많은 것이라고 본다.”
-안세영 선수가 제기했던 문제는 일부 받아들여졌는데.
“저도 선수 출신이고 체육계 현장에 있어서 많이 체감하고 있던 일이다. 국가대표 선수에겐 각자 맞는 용품이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을 보면 경기복은 선수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트레이닝복 등은 여러 업체를 후보로 두는 식으로 하기도 한다. 특정 용품을 강제하는 건 협회의 핑계라고 생각한다. 이익이 줄더라도 경기복만큼은 선수들이 원하는대로 맞춰줘야 한다.”
-내년 사업 목표에 대해 설명해달라.
“현재 조사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조사 인력 증원하고 효율적으로 조사가 이뤄지게끔 하고 싶었는데 지난해는 예산이 정해진 상태에서 업무를 시작해 변화를 주기 힘들었다. 다행히 올해 예산이 23% 증액됐고, 전문조사관도 확충이 됐다. 단순히 조사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대표 선발전이나 전국체전 등에 가서 체육 현장을 둘러보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 IOC 윤리위원회처럼 선거법 규정을 만드는 것도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IOC가 후보자 자격 기준을 만드는 것도 벤치마킹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남은 임기 중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스포츠계의 비리 문제 등이 왜 반복해서 나타난다고 보시나.
“예를 들어 배드민턴협회에 대해 조사가 이뤄지고 문제점이 발견돼도, 같은 일이 있는 다른 협회들은 그게 잘못인 줄 모르고 그냥 한다. 페이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협회도 똑같이 하고 있는지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를 해보면 ‘해도 된다’는 의견을 낸다. 국민 세금을 쓰는데 적절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면 당연히 제재를 해야 한다. 이건 스포츠 독립성과 무관한 문제다. 하는 일의 잘못을 지적하는 거지, 스포츠인이 잘못됐다고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건 어떨 때인지.
“증거가 없어서 기각되거나 각하되는 사건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게 제일 안타깝다. 증거 확보는 쉽지 않고, 사건에 대해 진술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학부모나 지도자에게 설득돼 이를 번복하기도 한다. 그러면 신고한 선수는 결국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선 결국 각 협회가 운영하는 공정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정리=이누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