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설 중 하나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이었다. 책을 잡자마자 몇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가 컸다. 하지만 막상 극장에서 본 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다. 공룡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컴퓨터그래픽은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길 정도로 대단했지만, 소설을 보면서 상상했던 장면보다는 압도적이지 않았다.
많은 소설 원작 영화들이 실패한다. 이는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발휘하는 상상력과 감독이 만들어낸 화면의 차이에 기인한다.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글을 통해 장면을 자유롭게 상상한다.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음성, 배경의 세부적인 모습까지 독자가 그려내는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감독의 해석에 따라 만들어진 단 하나의 비주얼 콘텐츠로, 관객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관객이 상상했던 세계와 감독이 구현한 세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실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상은 뉴스를 소비하는 행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뉴스는 텍스트로 접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종이신문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긴 했지만 뉴스를 글로 읽는 행위 자체는 유지됐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영상 뉴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4 한국’에 따르면 한국인 51%가 유튜브로 뉴스를 소비하고 있으며, 모든 연령대에서 유튜브 뉴스 이용률이 47개국 평균보다 높았다. 특히 60대 이상에서는 두 배 가까이 많았다.
텍스트 형태의 뉴스는 읽으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텍스트의 특성상 비어 있는 곳곳을 직접 상상하며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 뉴스는 다르다. 유튜브 뉴스는 제작자가 만든 영상과 내레이션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상을 본 시청자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자책은 한 권의 용량이 많아야 100MB 안팎이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은 최소 1.5GB다. 주어지는 정보량이 많을수록 소비자 입장에서는 직접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
문제는 이런 영상 뉴스 소비 방식이 특정 주장에 경도될 가능성을 키운다는 데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추천하며, 자극적이고 조회수를 노린 극단적인 뉴스가 주목받는 구조를 강화한다. 이로 인해 극우든 극좌든 시청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계속 접하며 편향된 시각을 가지게 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일부 유튜버들은 이런 특성을 노리고 확인되지 않은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쏟아낸다.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
뉴스를 소비할 때 우리는 반드시 해석과 비판의 ‘공간’을 남겨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의견과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열어야 한다. 비판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건설적인 발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돼야 한다. 이런 태도는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는 뉴스 소비의 중심이 유튜브로 옮겨간 상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는 편리하고 강력한 뉴스 소비 플랫폼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다양한 채널과 시각을 통해 정보를 검토해야 한다. 소설을 읽을 때처럼 뉴스를 볼 때도 우리의 상상력과 비판적 사고를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다.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