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과거지향적 틀을 개선해야

입력 2025-01-02 00:31

분열돼 치킨게임 벌이는 사회 오징어게임처럼 파멸로 몰아
시대변화 담지 못한 법제도에 대립 심화되고 경쟁력은 추락
과거에 얽매인 근로시간 기준 반도체특별법부터 통과시켜야

공개와 동시에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고 있지만 오징어게임 시즌2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목숨을 건 다섯 번의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다음 게임을 이어갈지 묻는 찬반 투표가 진행된다. 더 많은 상금을 챙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음 게임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과 도전을 멈추고 지금껏 주어진 상금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 간에 갈등이 증폭되면서 더 많은 표를 확보하기 위해 상대 진영에 속한 참가자들을 죽이는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이념으로 분열돼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는 우리 사회를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여객기 사고의 명칭을 놓고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진영 간 갈등은 오징어게임처럼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오징어게임 시즌1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456억원의 상금을 챙긴 우승자는 써도 써도 줄지 않을 만큼의 돈을 가진 부자들이 무료한 삶 속에서 재미를 찾기 위해 게임을 기획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주최 측에 분노한다. 그리고 참가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게임을 멈추기 위해 게임에 다시 참가해 참가자들에게 서로 간의 싸움을 멈추고 죽음의 게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최 측과 싸워야 한다고 설득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도 이념을 달리하는 상대 진영이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구성원 간의 갈등을 야기하는 과거지향적인 사회의 틀과 싸워야 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법제도는 정부 주도의 압축 성장을 이뤄냈고,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압축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을 막아냈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법제도는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수명을 다해가는 듯하다. 구성원 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산업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다. 근시안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새로운 시대를 담아낼 수 있는 틀을 마련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또한 새로운 틀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지지 세력의 표를 의식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성장을 저해하는 포퓰리즘 입법은 경계해야 한다. 급속한 변화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를 구성원에게 부여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다양해지는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틀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를 구성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노력한 만큼 성과가 만들어지고 성과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빅터 브롬의 ‘기대 이론’을 구현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기계의 부품처럼 여겨지며 기본 생활이 보호받지 못하던 산업화 시대의 관점에서 획일적으로 설계된 근로기준법도 개선돼야 한다. 여전히 교섭력이 낮은 저임금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보호하되 교섭력이 높은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들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 같이 근로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시급성을 요하는 경우 기존 근로기준법 적용에 예외를 두는 융통성도 필요할 것이다.

장시간 근로 관행의 폐해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주52시간 근무제의 적용 예외가 현재 입법 논의 중인 ‘반도체 특별법’의 쟁점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핵심 인력의 집중 근로가 필요한 연구·개발을 위해 3개월간 평균 주40시간 이내면 1일 또는 1주당 근로시간의 제약 없이 근로자가 선택한 시간에 근로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기도 하고, 근로자의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통해 최대 주64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연장근로 인가제’의 경우 1회당 3개월에 불과하며 재인가도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제품 개발과 납기가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반도체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반도체산업이 현재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52시간 근로제의 적용 예외를 담은 반도체 특별법을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