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한 시국, 회식·예약 줄취소… 자영업자들 아우성

입력 2025-01-01 03:14
들뜬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든 연말연시다. 송년 모임으로 북적여야 할 3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가는 늦은 오후에도 한산한 모습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겹치며 크고 작은 모임이 취소돼 소상공인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말연시 대목을 앞두고 비상계엄·탄핵 사태에 이어 무안 제주공항 참사까지 발생하면서 내수 경기는 더욱 얼어붙었다. 정부의 국가 애도 기간 선포로 공직 사회를 중심으로 송년·신년회 등 단체 모임도 사실상 금지되면서 자영업자들은 “최악의 연말을 보내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31일 정부·외식업계에 따르면 정부·공공기관과 공기업, 지방자치단체는 직원들에게 단체 회식과 체육행사 금지를 지시했다. 기업들도 애도 기간에 단체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움츠러든 모습이다. 경제단체들은 신년인사회 등 주요 경제인 행사를 잇따라 취소했다.

단체 모임이 줄면서 외식업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고충은 커졌다. 특히 관공서 및 대기업 상권에서 영업하는 이들이 타격을 입었다. 대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배모씨는 “지역 관공서에서 애도 기간 때문에 회식이 금지됐다며 45명 예약을 취소했다”며 “힘든 시국에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매우 속상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통상 매년 12월 31일 열리는 기업과 관공서의 종무식은 시상식이나 공연 등의 행사를 생략하고 간소하게 진행됐다. 이달 초 탄핵 정국에서도 정부·정치권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해 연말연시 모임을 예정대로 진행해 소비를 진작해 달라고 독려해왔지만 참사가 발생하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진 분위기다.

서울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모씨도 “한 공기업에서 단체행사용 치킨 50마리를 예약 주문해서 닭 손질까지 마쳐놨는데 행사가 취소됐다며 주문 취소를 요구했다”며 “슬픈 사고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영업자 생업을 위협하는 애도 기간 지정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도 “예약 취소 전화만 몇 통째”, “애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생계가 걸린 우리도 억장이 무너진다” 등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지난 29일 중앙재난대책회의에서 오는 4일 자정까지 7일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다. 국가 애도 기간은 법적 근거나 선포 기준, 운영 방식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지자체에서 진행해온 연말 해넘이, 신년 해맞이 행사 등은 줄줄이 취소됐다.

문제는 새해에도 내수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까지 오르면 소비자들이 더욱 지갑을 닫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보다 12.3 포인트나 하락했다. 하락 폭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3월(-18.3 포인트) 이후 최대치다. 2024년 폐업 신고 사업자(개인·법인)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소상공인 관계자는 “국회 탄핵안 통과로 잠시 회복 국면을 보이던 소비 활동이 이번 참사로 다시 위축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며 “혼란스러운 정국에 향후 경기 부양을 위한 대책도 보이지 않으면서 불황이 장기화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