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라이저 개량 설계 용역엔 “부서지기 쉽게” 지침 있었다

입력 2024-12-31 19:00
지난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방위각 시설은 공항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테나로, 흙으로 된 둔덕 상부에 있는 콘크리트 기초와 안테나가 서 있는 구조다. 연합뉴스

한국공항공사가 무안국제공항 계기착륙시설(ILS) 개량사업 설계 용역 입찰 공고를 낼 당시 로컬라이저(방위각표시시설) 등을 ‘부서지기 쉽게’ 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콘크리트 둔덕형’으로 설치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민일보가 확보한 2020년 3월 한국공항공사의 ‘무안공항 등 계기착륙시설 개량사업 실시설계 용역’ 입찰 공고 과업내용서에는 ‘파손성(Frangibility) 확보 방안에 대한 검토’가 포함돼 있다. 과업내용서는 “장비 안테나 및 철탑, 기초대 등 계기착륙시설 설계 시 Frangibility를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참사에서 논란이 된 로컬라이저가 바로 계기착륙 시스템이다. 항공기가 활주로 중앙선에 수직으로 맞춰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안테나)다. 로컬라이저를 부서지기 쉽게 설계토록 한 건 이번 사고처럼 항공기가 활주로를 통과하는 ‘오버런’ 상황에서 충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는 국토부 공항안전 운영기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매뉴얼과도 부합한다. 공항시설법에 따른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에 따르면 공항부지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 ICAO 공항설계 매뉴얼도 ‘Frangibility 원칙’과 관련, “(공항부지) 물체나 장비는 만일의 충돌 상황에 대비해 쉽게 부서지거나 변형될 수 있도록 경량 소재로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안공항 내 로컬라이저는 콘크리트를 흙으로 덮은 약 2m 높이의 기초 위에 안테나를 세우는 방식으로 설치됐다. 지침과 달리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안테나를 지지하는 일종의 기초대로 사용한 셈이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해 “최초 설계 때도 둔덕 형태 콘크리트 지지대가 들어가 있는 구조”라며 “그 뒤 개량 사업을 진행하며 분리된 말뚝 형태에 두께 30㎝ 콘크리트 상반을 (추가로) 설치해 보강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사용 이유에 대해선 “비바람에 흔들리면 안 되니 고정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