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코리아인가

입력 2025-01-02 03:06
수난의 역사를 가진 한민족은 세상의 상처를 그리스도 복음으로 씻어줄 사명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최근 황성주 회장과 국내 사역팀이 이집트 피라미드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들이 한국 학생을 보고 환호하는 모습. 황성주 회장 제공

최근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갔을 때 일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수많은 이집트인이 몰려왔다. 특히 우리 선교팀 중 고2 여학생이 있었는데 현지 여인들이 몰려와 순식간에 학생을 둘러싸고 셀카를 찍었다. 수단 난민촌에 말씀을 전하러 간 한국 선교사에게 난민들은 오히려 한국의 비상계엄을 염려하며 코리아에 대해 애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한류 열풍으로 전 세계인이 코리안을 좋아하고 있다. 메신저를 좋아해야 메시지가 먹히는 법이다. ‘코리안 선교 르네상스’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이제 남북한 1000만 성도가 선교사가 되어 전 세계를 누벼야 할 때가 도래했다.

한국이 이처럼 사랑받는 나라가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난 5000년간 우리는 한 번도 남을 침략한 일이 없고 우리가 박해를 받지 않는 한 타민족을 배척한 일도 없다. 한국은 착한 나라요 우리 민족은 어질다. 한민족을 지칭하는 단어, 동이(東夷)의 본뜻은 ‘대의를 따르는 의인들’이고 190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극찬했던 나라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 나의 조국 코리아여!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라는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오랜 인고의 열매로 마침내 세계의 등불이 된 나라가 코리아이고 착한 얼굴을 가진 민족이 코리안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의 얼굴은 항상 슬프다. 20세기 마지막 형이상학자이자 ‘타자 철학’ 창시자, 얼굴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은 계시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타인의 얼굴은 신의 얼굴, 우주의 얼굴, 곧 나의 얼굴이라고 했으며 지고의 선은 만인의 얼굴에서 나온다 했다. 한국인의 얼굴은 착하고 착한 얼굴이요 슬픈 얼굴이요 인고의 얼굴이다. 피해의식의 공감대라고 할까. 그래서 만인의 얼굴이 되어 마침내 사랑받는 민족이 되지 않았을까.

코리아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다”(시 137:1~2)는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하는 피압박 식민지였다. 처절한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민족의 허리가 동강 난 장애인 국가이다. 삼천리 반도에 항상 고통과 슬픔이 배어 있는 한 맺힌 민족이었다. 우리 민족에겐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흐름이여”는 예레미야 애가(1:16)의 말씀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동병상련의 정으로 세계를 사로잡는 나라가 되었다.

함석헌 선생은 ‘이 고난의 짐을 우리에게 지워놓고 세계가 준 것은 업신여김과 비웃음과 손가락질이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사람과 천사와 세계에 구경거리가 되었다. 아니다, 세계사의 하수구가 되었다. 아, 너 위대한 세계사의 하수구여’라고 표현했다. 이 하수구에 일제 식민통치와 민족상잔의 비극은 말할 것 없고 분단 이후 남녘에선 절박한 생존을 위한 희생을, 산업화의 쓰레기를, 민주화의 깊은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북녘에선 공산화와 숙청의 고통을, 고난의 행군의 처절함을, 순교적 믿음의 사투를 슬픔으로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수난의 여왕인 우리 민족에게 두 차례 전무후무한 영적 부흥을 선물하셨다. 화(禍)가 복(福)이 된 것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은 일제 침략에 대비한 영적 훈련이었으며 1970년대의 폭발적 부흥은 21세기 세계선교를 위한 영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념비였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6·25전쟁 당시 절박한 상황에서 일어난 기도운동으로 산업화와 교회 부흥이, 70년대 청년세대에서 일어난 말씀 운동으로 민주화와 사회변혁이, 이후 일어난 해외선교운동으로 선진화와 혁신국가의 면모가 갖추어진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잘한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성경적 비전을 붙잡고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절망과 혼돈에서 사명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세계사의 하수구를 생수가 터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물로 연결한 것이다. 당시 온 성도들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민족복음화에 전력했다. 이 과정에서 민족의식과 예수 의식을 연결한 김준곤 목사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세계복음화 전략에서 각국의 민족의식과 부족의식을 에너지화하면 핵폭탄급 위력이 나타날 수 있다.

김 목사는 또 청년들에게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게 하는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선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코리아는 5만 선교사(비공식 포함)를 세계 열방에 파송해 인구 대비 선교사 파송 일등국이 된 대반전의 모델국가이고 세계를 섬기는 국가이다.

나는 극단적 가정폭력의 피해의식 속에 몸부림치다 대학 시절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다. 당시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버들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름다운 들판을 산책할 때마다 패인 웅덩이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온 다음 날 산책하다 보니 그 자리에 아름다운 호수가 생겼다. 흉한 웅덩이가 수려한 호수로 바뀐 것이다. 이때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상처의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아름다운 호수가 된단다.’ 마치 인생의 비밀이 풀어진 느낌이었다.

지금도 우리 민족은 고통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소위 민주주의라는 하수구에서 흘러내리는 오물에 모두 개탄만 하고 있다. 이제 모든 성도가 사명자로 일어나 생수의 샘을 파야 한다. 이 고통의 웅덩이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쳐 온 세상의 상처받은 민족들을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원동력으로 전환되길 기도해야 한다.

이제는 세상 나라와 세상의 의를 향한 기대를 접고 하나님 나라에 집중할 때이다. 주여! 이 땅에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사명과 존재 이유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황성주 이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