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법꾸라지

입력 2025-01-01 00:40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는 법 지식을 악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이를 일컫는다. 법률가를 낮춰 부르는 ‘법 기술자’에서 더 깎아내린 이 조어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등장했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소환된 우병우 민정수석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는데, 출석요구서를 수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본인이 수령해야 국회법의 불응 처벌 조항이 적용되는 점을 잘 알았던 그는 청문회와 처벌을 함께 피하는 잠적을 택했다. 시민들이 현상금을 내걸 만큼 비난 여론이 커지자 3주 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도 구속영장이 삼세번 만에 발부됐을 만큼 요리조리 빠져나가 법꾸라지 이미지를 굳혔는데, 당시 이 별명은 여러 사람에게 전이됐다. 박근혜 청와대의 ‘문고리’로 불린 이재만 안봉근 비서관은 우병우 수법을 따라 탄핵심판 증인출석요구서 수령을 회피해 역시 법꾸라지란 비난을 받았다. 청문회에 나와 모르쇠로 일관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50년 공직생활 중 형사처벌 위기를 여러 차례 벗어났던 전력에 ‘원조 법꾸라지’란 말을 들었다.

현 정부 들어 법꾸라지 비판은 사법 리스크 방탄에 매진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주로 향했는데, 8년 만에 다시 탄핵 정국이 열리며 여권의 법꾸라지 행태가 전면에 등장했다. 권한대행의 권한이 어떠니, 탄핵 정족수는 몇이니 하면서 아전인수 법률 해석으로 정국을 어지럽히고 있다. 무엇보다 황당한 건 우병우를 구속했던 윤석열 대통령(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그의 ‘수령 거부’ 기술을 꺼낸 대목이었다. 헌법재판소 서류 송달을 회피하고 수사기관 소환에 네 차례나 불응한 끝에 결국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그러자 이번엔 그 영장이 불법이라는 더 황당한 주장을 들고 나왔다. 공수처에 수사권이 없다는 논리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한다. 법치를 말하던 이가 법원이 발부한 영장마저 부정하고 나섰다. 이쯤 되면 법의 구멍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를 넘어 메기가 되려는 것 같다. 법체계에 흙탕물을 일으켜 그 위에 군림하는.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