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하루 앞둔 3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 주거 취약계층을 돕는 시사잡지 ‘빅이슈’ 판매원 이원영(59)씨가 거리에서 판매 준비에 분주했다. 마지막 준비로 그는 이렇게 적힌 기도문을 난간에 붙였다.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새해 하시는 일 모두 성공하시길 빕니다.’
이씨는 기자에게 “2024년은 모두가 슬프고 힘든 해였지 않았냐”면서 “크리스천으로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기도문을 내걸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2024년 초 자영업에 실패해 길거리를 방황했다고 전했다.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고 죽을 뻔했던 이야기, 상자로 추위를 막으며 살았던 나날을 풀어냈다. 그러다 지난 6월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있는 광야교회(임명희 목사)를 만나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노숙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15일차 판매원이 된 그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씀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지금이지만 내년에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창대하고 행복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새해를 맞이해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더욱 불안하고 공허한 요즘이지만, 우리의 이웃들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교회엔 빛과 소금 역할을 주문했다. 우리 사회 소외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전하는 ‘함께’ ‘안녕’ 등의 단어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폐지를 수집하는 정임순(가명·85) 할머니는 지난해를 “양심이 부족했던 해”라고 꼬집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모두 서로의 욕심만을 부리려 했기에 사건 사고까지 잇달아 일어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 할머니는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며 “우리 같은 폐지수집 노인들은 많은 거 바라지 않는다. 그저 건강하고 안녕해 줄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해줬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1인 가구 박형준(가명·27)씨는 2024년을 소중함을 잊고 있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를 일깨운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사회는 더 따뜻하고 배려심이 넘칠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교회다운 역할을 감당해 소외된 이웃과 함께 울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빛과 소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 허옥희(57) 혜림교회 집사는 평화와 안녕을 소망했다. 그는 “국민은 반으로 쪼개지면서 정국이 참 불안한 요즘”이라면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합심하고 정치적 안정을 되찾아 북한과의 평화 통일을 이루게 될 날을 꿈꾼다”고 전했다.
자립준비청년 그룹홈 사역하는 정한별(34) 전도사는 한국교회에 ‘꾸준함’을 요청했다. 정 전도사는 “내년에는 한국교회가 단발적인 지원을 넘어서서 자립준비청년들을 꾸준히 돌보며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할 기회와 분위기를 제공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동규 박윤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