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진짜 이유 설왕설래
김 여사 문제, 명태균 폭로가
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
이 대표와의 경쟁심리가
파국 부른 또다른 요인
이 대표, 6차례 기소에도 생존
윤 대통령, 비상계엄 한 방에
스스로 무너져 체포될 운명
대권놓고 경쟁하다 나란히
사법심사대에 오른 두 사람
대결과 악연 그만 보고 싶다
김 여사 문제, 명태균 폭로가
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
이 대표와의 경쟁심리가
파국 부른 또다른 요인
이 대표, 6차례 기소에도 생존
윤 대통령, 비상계엄 한 방에
스스로 무너져 체포될 운명
대권놓고 경쟁하다 나란히
사법심사대에 오른 두 사람
대결과 악연 그만 보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자살을 시도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를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가당치 않다. 군인들의 중앙선관위 서버 탈취 시도가 부정선거 의혹 때문이라는 주장도 상식과 거리가 멀다. 부인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려고, 정치브로커 명태균의 추가 폭로를 막으려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국을 뒤엎으려고 했다는 추측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질긴 악연과 경쟁 심리가 파국을 부른 또 다른 요인이라는 생각도 든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담화문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망상이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주도한 촛불집회에서는 이 대표조차 ‘대통령 탄핵’이라는 말을 조심스러워했다. 탄핵 요구가 분출한 건 비상계엄이 발동되면서다. 그런데도 ‘야당이 2년 반 동안 탄핵을 선동했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이 대표의 존재를 정치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승자의 여유와 아량을 보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겨우 0.73% 포인트 차 신승을 거두고도 패자인 이 대표를 위로하거나 포용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자신과 대등한 수준의 지지를 받은 이 대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사가 피의자를 대하듯 냉대했다. 취임 이후 2년이 넘도록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이 대표를 따로 만나지 않았다.
현 정부에서 이 대표가 맞닥뜨린 현실은 수사와 재판의 연속이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불체포 면책특권을 얻고, 당 대표에 당선돼 방탄벽을 겹겹이 쌓았지만 거듭된 사법리스크는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위협했다. 이 대표는 22일간 단식투쟁에도 체포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막지 못했고 판사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 대표는 극적으로 회생했고, 이후 당내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반전을 끌어냈다. 4·15 총선 승리는 이 대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현 정부 출범 이후 6차례 기소됐지만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게는 큰 좌절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개혁과제를 관철할 수 없는데도 야당과 타협하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려 여당의 국회 의석수를 늘리는 역량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거를 앞둔 여당에 짐이 될 뿐이었다. 국민의힘 총선백서위원회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논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 등을 선거 패인으로 열거했는데 모두 용산발 악재들이었다. 민주당이 ‘비명횡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천 파동을 겪었지만 윤 대통령에 등을 돌린 민심은 여당인 국민의힘에 회초리를 들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총선 직후 단 한 번 여야 영수회담을 가졌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이 대표가 카메라 앞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방식으로 15분 공개발언을 하는 동안 윤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후 두 사람 사이는 더 멀어졌다.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고 11월 시정연설도 생략했다. 야당은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탄핵하면서 윤 대통령을 더 자극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도 ‘대통령 권한의 최대치를 휘둘러 보겠다’는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비상계엄을 꺼내들었지만 큰 패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대표의 지속적인 견제와 압박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는 윤 대통령의 사법리스크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압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3년 동안 수사와 재판에 시달리면서도 정치 생명을 이어갔지만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스스로 끊었다. 탄핵심판에서 살아돌아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 전에 내란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공수처·경찰 공조수사본부에 의해 체포될 운명이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 두 사람이 나란히 사법 심사대에 오른 것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의 대결과 악연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