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 실패’ 사슬 끊고 국정·협치·민생 회복에 힘 합치자

입력 2025-01-01 01:20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대한민국호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것이 시험대일지 모를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새로운 기대를 품고, 희망을 얘기하고, 도약을 꿈꾸기 마련이지만 올해처럼 기대와 희망, 도약이라는 말이 쉽게 떠올려지지 않는 해도 없었던 듯하다. 올해가 어느 때보다 기뻐해야 할 광복 80주년이라 더더욱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이는 대한민국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엄혹한 상황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에 현직 대통령에 의한 계엄 선포와 내란 시도가 있었고,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마저 탄핵소추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계엄 사태는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 경제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고, 대외적으로도 국격을 크게 실추시켰다. 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우리는 여객기 참사를 직면해야 했다. 무려 179명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국가적 재앙이다. 악재는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말이 이토록 실감되게 다가온 적도 없을 것이다.

법과 민주적 절차로 국정 조기 수습해야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무엇보다 국정을 정상화하는 일이 급선무다.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로는 지금의 불안정한 국정을 수습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려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 다행히 어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가 공석이던 헌재 재판관 3명 중 2명을 임명해 8인 체제가 됐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기왕이면 9인 체제로 심판이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도 국가와 국민을 소중히 여긴다면 헌재 심판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렇게 정상적으로 탄핵심판이 이뤄져야 국정도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판 결과가 나오면 진영을 불문하고 깨끗이 승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진영·특정인 아닌 민심 섬기는 정치 절실

지난해의 국정 혼란은 정치가 실패한 탓이다. 국회와 대화를 단절하고 계엄 공상에 빠졌던 대통령, 수적 우위만 내세워 탄핵과 특검 발의에 골몰하며 강 대 강 대치에 기름을 부은 야당, 존재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무기력했던 집권여당이 합작한 결과다. 어느 한쪽도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았다. 새해에는 이런 대립을 청산하고 협치로 정치를 정상화해야 한다. 또 진영의 눈치를 보거나 특정인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민심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정치가 변해야 좌초 위기에 빠진 연금·노동·교육·의료 등 4대 개혁 과제도 탄력을 받을 수 있고 민생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지난해 정치 지도자를 얼마나 잘 뽑아야 하는지 실감하고 또 실감했다. 대선 후보 검증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만약 올해 대선이 있다면 권력을 남용하거나 무능한 지도자를 뽑는 우를 두 번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진짜 제대로 된 지도자를 세워야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온전히 회복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트럼프발 경제·안보 리스크 만반 대비를

나라 밖으로는 미국에서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다.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미국 우선주의’로 대변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통상정책은 우리의 대외 불확실성을 한껏 고조시킬 수 있다. 급격한 관세 인상이 현실화되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격화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선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북한이 참전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다른 리스크다. 북한군 사상자가 급증할 경우 자칫 그 여파가 한반도로 미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미 간 ‘직거래’도 우려된다. 이런 변수들을 감안하면 미 정부와의 동맹 강화, 기업 수출 활성화 및 금융·외환시장 안정화 대책 마련, 빈틈없는 대북 안보태세 등에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정상외교 공백 상태에선 민관 소통 채널을 총동원해 미국 및 우방국과 관계 강화에 나서야 한다.

국내 정치 상황, 대내외적 경제 여건, 외교안보 환경 등 어느 하나 녹록지 않은 을사년이지만 올해 어느 언저리에는 마침내 국난을 이겨내고 안정을 되찾는 때가 오리라 기대한다. 우리 국민은 과거에도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매번 위기 극복의 저력을 보여 왔다. 올해에도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어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