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하면서 경북 포항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포항의 철강산업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중국발 저가 철강 공급과잉, 내수 부진 등이 겹치면서 지역 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국내 철강업계에 미칠 악영향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현대제철 공장 폐쇄
포항 철강업체들은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 정리에 나섰다. 포스코는 지난해 공장 두 곳을 폐쇄했다.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은 50년이 넘게 9500만t이 넘는 철강을 생산했지만, 설비 노후화로 지난해 7월 가동을 중단했다. 11월에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수요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포스코 측은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과 해외 저가 철강재 공세 등으로 날로 악화하는 수익성을 개선하고 효율화를 이루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도 포항2공장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반발로 일단은 해당 지침을 철회하고 노사 간 협의를 진행 중인 상태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포항 경제를 이끄는 양대 기업의 부진으로 100여 곳이 넘는 정비 수리 운송 등 협력사와 포항철강산업단지 내 관련 300여개 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포항이 처한 위기는 수치로 나타난다. 포항시에 따르면 포항권 철강 수출액은 2018년 103억1700만 달러에서 2021년 85억5700만 달러, 2023년 64억600만 달러로 급감했다. 포항철강산단 고용인원은 지난해 9월 1만3528명으로 10년 전인 2014년 9월 1만6178명보다 2650명(16.4%) 감소했다. 생산실적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11조 2918억원으로 10년 전 같은 기간 12조 5413억원보다 1조 2495억원(10.0%) 줄었다.
이 같은 연쇄 여파로 골목 상권 등 지역 경제 전반이 얼어붙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포항남구지부 관계자는 “식당 등 골목경제는 IMF와 코로나 때보다 어려울 정도로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포항시, 위기 극복·민생 안정 총력
포항시는 철강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시는 지역 산업위기대응 전담 TF를 운영하면서 기업 지원 시책을 발굴하고 기업 및 유관기관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위기 극복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철강산단 대개조 사업을 통해 침체된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또 철강 분야에 집중돼 있는 산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기 위해 이차전지, 신약·바이오, 수소 산업 등 국책사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정부 차원의 조속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보고 국회, 정부기관 등을 찾아 특별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대한주택건설협회 및 대한전문건설협회에 국내산 철강의 우선적 사용을 건의했다. 같은 달 철강기업 위기에 따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역산업위기 대응 유관기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유관기관과 함께 적극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지난 12월 철강 생산 현장을 찾아 근로자를 격려하고 철강관리공단을 방문해 입주 기업 대표들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같은 달 국회와 산업부를 연이어 방문해 지역 주력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또 중소기업 정부보조금 지원, 국내 기업 의무할당제, 산업용 전기료 인하, 중국산 후판 반덤핑 제소 신속 처리 등 대정부·국회 차원의 특별지원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과 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 연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시는 급격한 경기 침체와 혼란한 정국 속에 민생경제 안정과 경기활성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소상공인 특례보증을 2000억원 규모로 확대해 골목상권 자금난 해소에 나서는 한편, 특별 할인된 지역화폐를 연초에 조기 발행해 지역 내 소비 촉진과 소상공인 매출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철강 무너지면 나라 경제 흔들… 정부 차원 지원 절실”
이강덕 포항시장
이강덕 포항시장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강덕(사진) 경북 포항시장은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철강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국회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세계 지정학적 갈등의 지속과 함께 주요국의 자국 중심주의 강화 속에서 국내 경제성장률은 2% 내외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우리 지역경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철강과 이차전지 산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내년에도 철강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철강업체들의 공장 폐쇄나 매각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포스코는 중국 장가항포항불수강 제철소 매각을 추진 중이다. 현대제철도 중국 법인의 매각 가능성이 있다.
이 시장은 "철강과 이차전지의 위기 극복은 지역 생존을 넘어 국가산업의 경쟁력이 달려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지역 각 기관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맞아 대내외적인 변동성과 불확실에도 흔들리지 않는 포항의 경쟁력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 위기와 정국 불안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시민을 위해 소상공인 지원 확대와 민생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책도 마련하겠다"며 "포항의 근간이 되는 철강이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포항=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