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한때 지구의 절반을 자연에 위임할 것을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지구 지표면의 50%를 국립공원 같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의미였다. 그가 이렇듯 극단적 처방전을 제시한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때문이었다. 암담한 인류의 미래를 포함해 누란지위에 놓인 지구촌 생명체의 운명을 바꿀 방법은 지구의 절반을 온전히 자연에 맡기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지난여름 그야말로 푹푹 찌는 가마솥더위를 경험하면서 자주 윌슨의 주장을 떠올려보곤 했다. 매일 반복되는 열대야와 4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은 왜 폭염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는지 실감케 했고 심지어 추석 연휴에도 찜통더위는 계속됐다. 전설처럼 전해지던 1994년의 더위를 가뿐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2024년은 당분간 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1.5도는 국제사회가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설정한 마지노선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기후 붕괴의 예광탄이 쏘아 올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6차 보고서엔 지구의 미래가 담긴 다섯 개의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가 담겼는데 그중 최악의 버전은 2100년까지 기온이 3.6~4.4도, 혹은 그 이상 치솟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요술봉 같은 해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전망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상당수 지구촌 생명체가 존폐의 기로에 설 수 있는 상황이지만 기후변화는 인류 앞에 쌓인 과제물 중에서 최우선순위가 되진 못하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에서 인류가 마주한 과제들이 각각 얼마나 심각한지 5점 척도로 분석해놓았는데 기후변화에 대한 평가가 특히 나빴다. 기후변화는 방치 수준에서 겨우 1점을, 해결 용이성에서는 고작 2점을 기록했다. 관심도 받지 못하고 문제 해결도 난망하다는 판정을 받은 셈이다. 이스라엘 학자 유발 하라리가 과거 내놨던 전망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앞으로 지구촌엔 대규모 전쟁이 없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그가 이런 전망의 밑받침으로 삼은 것은 달라진 ‘경제의 성격’이었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자산은 노동력도 금광도 유전도 아닌 지식이다. 하라리는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애플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들의 가치는 수천억 달러에 이르지만 그것을 힘으로 장악할 수는 없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실리콘밸리에는 실리콘 광산이 없다”고.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 같은 예상도 뒤흔들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 광산은 없지만 안전한 보금자리는 있으니까, 극단적인 기후변화 탓에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는 상황에서 갈등과 싸움은 불가피할 테니까, 많은 사람이 생존이 가능한 곳을 찾아 국경을 넘을 것이니까. 실제로 2050년이 되면 기후변화가 야기한 해수면 상승과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로 대규모 기후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세계은행은 그 규모를 1억4000만명으로, 유엔은 2억명으로 각각 추산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지구의 절반을 포기하자는 윌슨의 주장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식자우환의 결과물도, 나이 든 학자의 성마른 호들갑도 아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이는 다가올 2025년의 여름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