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179명의 시신이 모두 수습됐지만 신원 확인 절차는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미성년자 14명의 경우 가족과 DNA 대조 작업이 필요해 30일 저녁 늦게부터 신원 확인 절차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대표단을 꾸리고 희생자 신원 확인이 끝날 때까지 장례 절차를 중단하기로 뜻을 모았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기준 사망자 179명 중 16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DNA 검사를 통해 18명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되면서다. 전체 희생자 가운데 지문 대조가 가능한 사망자는 151명이었다. 나머지 28명은 시신 훼손 정도가 심해 지문 감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미성년자는 성인이 되기 전에 지문 등록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DNA 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성인보다 까다로운 신원 확인 절차 때문에 미성년 희생자 유족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이날 무안국제공항 2층 대기실에서 만난 60대 여성 A씨는 “이번 사고로 안사돈과 사위, 9살짜리 외손녀를 한꺼번에 잃었다”며 “외손녀가 미성년자라 지문 등록도 되지 않았고, 또 너무 어린 탓에 시신 훼손이 커 신원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디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10대 외손자 형제와 생이별을 한 김은숙(64)씨도 신원 확인 절차가 늦어지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합격한 첫째 외손자가 동생을 데리고 태국 여행을 다녀오다 사고가 났다”며 “일주일 전 첫째가 영상 통화를 걸어와 ‘할머니, 나 대학 가요’라고 자랑하던 모습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박모(42)씨의 아내 고모(42)씨는 이번에 중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태국을 찾았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박씨는 여행 직전 고씨에게 둘째 임신 소식을 들었지만 그게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했다. 박씨는 아내 친구들의 시신 신원 확인 절차가 마무리되고 시신을 인도받는 대로 함께 광주 모처에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60대 여성 진모씨도 이번 사고로 친척 동생과 조카 2명 등 가족 3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진씨는 “건실하고 성실한 조카들이 너무나 안쓰러워 누워도 잠을 잘 수 없다. 밤새 공항을 계속 맴돌았다”며 “다섯 식구 중에 3명을 한꺼번에 잃게 된 엄마와 남은 딸은 이제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이번 참사에 희생당한 태국인 2명의 신원도 확인됐다. 태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22세 여성 A씨는 방콕의 한 대학 4학년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사고 여객기를 탔다. 한국인과 재혼해 한국에 사는 A씨의 어머니는 무안공항에서 딸을 기다리다 사고 소식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태국인 희생자인 45세 여성 B씨는 약 7년 전 일을 하러 한국으로 온 뒤 한국인과 결혼했다. B씨는 1년에 한 번 고향을 방문하곤 했는데, 올해도 남편과 함께 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 남편은 B씨보다 먼저 돌아와 사고를 면했다.
참사 유가족들은 이날 대표단을 꾸리고 희생자의 신원 확인이 완료될 때까지 장례 절차를 중단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번 참사로 동생 박형곤씨를 잃은 박한신씨가 유족 대표로 뽑혔다. 박 대표는 유족들을 향해 “10년 전 세월호 사건 때처럼 정부에만 의지해선 안 된다. 우리가 흩어지지 말고 다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김용현 최원준 기자, 김남중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