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랜딩기어·둔덕’ 삼중 악재 겹쳤다

입력 2024-12-30 19:01 수정 2024-12-31 00:16
30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무안 제주항공 참사 당시 항공기 조종사가 조난 신호인 메이데이를 선언하면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을 언급했다고 30일 국토교통부가 밝혔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기 조종사가 오전 8시59분 조류 충돌로 메이데이를 선언하고 복행(착륙하지 않고 고도를 높이는 것)을 했다”며 “처음이자 유일한 조류 충돌 언급”이라고 말했다.

당시 제주항공 7C2216편 조종사는 관제탑에 ‘버드 스트라이크, 버드 스트라이크, 고잉 어라운드(복행)’라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영태 극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사고 원인이 명확히 규명돼야겠지만 조종사가 비상선언을 하며 언급한 내용은 당시 비행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당시 무안공항 관제 교신자료를 수집하고 관제사 면담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항공기 블랙박스인 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자료기록장치(FDR)도 김포공항 시험분석센터에 보내 분석 절차에 돌입했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 관계자 2명과 사고기 제작사인 보잉 관계자 2명도 이날 저녁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사고 조사에 참여했다. 사고 기체 엔진 제작사 CFMI는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사고 조사는 최초 무안공항 착륙 허가 시점인 오전 8시54분부터 활주로 외부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한 9시3분까지 9분여간의 정황을 규명하는 것에 집중될 전망이다. 항공운항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를 ‘불행의 불행’이 겹친 불의의 사고라는 시각에 무게를 둔다. 사고 가능성 중 하나인 조류 충돌과 랜딩기어(착륙장치) 미작동, 제동 실패에 따른 콘크리트 둔덕 충돌 등의 겹악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복행 이후 1분여 만에 터치다운존(통상적 착륙지점)을 지난 위치에 재차 긴급 착륙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양쪽 엔진이 동시에 멈추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장조원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해당 기체를 6000시간 이상 조종한 베테랑 기장이 촉박하게 착륙을 시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활주로에 빨리 내려야 할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교수도 “랜딩기어 미작동 시 재차 복행해 기기 점검 등을 취할 수 있었다”며 “엔진 이상에 따른 동력 상실 여부 등이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고기가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논란도 확산하고 있다. 착륙 유도 안테나(로컬라이저)를 단단한 콘트리트 벽 위에 세우는 것은 드문 사례라는 것이다. 국토부는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 등 국내 공항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 등도 (로컬라이저 구조물에) 콘트리트를 썼다”고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엄정한 사고 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국토부와 경찰청에 지시했다.

세종=양민철 김혜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