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2일 일본 여행을 계획했던 이모(27)씨는 30일 예매해 둔 제주항공 비행기표를 다른 항공사 표로 변경했다. 6만원의 추가금이 들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이씨는 “참사 다음 날에도 제주항공 기체에서 결함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탑승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달 가족과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던 서모(32)씨도 저비용 항공사(LCC)에서 대형 항공사로 항공권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 서씨는 “진에어도 이번에 사고가 난 기종을 19대나 운영하고 있었다”며 “평소 항공권 예매를 할 때 가격과 시간대만 살폈는데, 이제는 기종까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SNS상에서도 LCC 표를 끊었던 여행객들이 다른 대형 항공사로 갈아타거나 여행 자체를 취소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여파로 LCC와 지방 중소 여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고환율·고물가에 따른 수요 위축에 대형 참사까지 겹치면서 성수기인 연말·연초 여행 취소 사태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참사 직후부터 여행상품 취소·변경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주요 여행사들은 제주항공을 이용하는 상품을 대상으로 취소·변경 수수료를 면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분위기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평소보다 상품 취소 문의가 배 이상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신규 예약 감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여행상품 취소 문의는 중소 여행업계에 몰리고 있다. 이번 참사 피해자 다수가 광주·전남 지역 여행사 상품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중소 여행사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중소여행사는 가격 부담이 적은 LCC를 이용하는 동남아·일본 상품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당분간 출국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행업계의 광고·홍보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홈쇼핑을 비롯한 채널에서 광고를 아예 취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참사 여파로 방학 시즌인 내년 2~3월 여행상품 문의도 급감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전남 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내년 1월 4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한 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연말에 비상계엄 사태와 고환율, 이번 사고까지 더해져 여행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행 매력도가 떨어져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 여행) 상품 모객에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관광업계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관광업계 안전망을 구축해 선제적으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2025년 상반기 관광진흥개발기금(관광기금) 운영자금 특별융자’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안전 문의가 이어지고 마이스(MICE) 행사가 취소·연기돼 피해를 보고 있는 관광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특별융자는 여행업, 호텔업, MICE 관련업 등 특히 피해 규모가 큰 13개 업종을 대상으로 500억원 규모로 지원한다. 이 업종들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 중 10억원 이내, 1.25% 포인트의 우대금리, 거치기간이 1년 확대된 6년의 상환기간을 적용한다.
문체부는 별도로 올해 상반기 3500억원 규모의 관광기금 일반융자와 500억원 규모의 이차보전을 동시에 진행한다. 담보력이 취약한 중소 관광업체를 대상으로 신용보증재단의 신용보증서를 제공해 저금리, 상환기간 연장 등 업체당 최대 2억원 규모 혜택을 주는 신용보증부 융자도 관광기금 융자와 연계해 700억원 규모로 시행한다.
신재희 최원준 김성훈 기자,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