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전직 대통령의 고향

입력 2024-12-31 00:38

카터 전 대통령 평생 머물렀던
플레인스는 전형적 시골마을

평범한 옆집 아저씨 이미지
퇴임 후도 변함 없는 모습으로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 칭호

우리나라 전직들과 비교되는
그의 평화로운 안식 부러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 플레인스(Plains)는 조지아주 남서부 섬터 카운티에 위치한 한적한 마을이다. 섬터 카운티 인구는 2010년 기준 3만2000여명 정도인데 그보다 100년 전인 1910년의 인구도 2만9000명 남짓이었다. 100년 전과 달라진 것을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인 시골인 셈이다. 마을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이곳 출신인 카터 전 대통령 덕분이다. 그는 해군사관학교와 군복무 시절, 조지아 주지사와 대통령으로 일하던 시절을 제외하곤 평생 플레인스에서 살았다. 29일(현지시간) 향년 100세로 별세하기까지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도 이곳이다. 2014년 즈음 조지아주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지내는 동안 한두 차례 플레인스를 스쳐지나갔는데 희한하게도 그럴 때면 잊고 지내던 한국의 고향 마을이 떠오르곤 했다. 플레인스는 이역만리에서 온 외지인에게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엘리트 출신의 승승장구하던 정치인이 아니었다. 고향 인근의 조지아남서주립대에 입학했다가 조지아공대로 편입했고, 이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등 고교 졸업 후 수차례 진로를 바꿨다. 해군사관학교 졸업 뒤 잠수함 등에서 장교로 복무했지만 부친이 사망하자 대위로 전역하고 귀향해 농장 사업을 물려받았다.

흑인 노예 해방을 반대했던 미국 남부에서 땅콩 농장을 운영한 그가 흑인 차별에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로 나선 것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자양분이 됐다. 하지만 정치 입문 후에 순탄한 길만 걸은 건 아니었다. 첫 상원의원 도전에선 낙선했다가 당선되는 희한한 과정을 거쳤다. 경쟁자의 부정선거가 드러난 덕분이었다. 주지사 선거 때도 한 번에 승리하지 못하고 두 번째에서야 당선됐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는 중앙 무대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정치인이었지만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고 결국 민주당 후보가 됐다. 대선에서도 접전 끝에 승리했으나 재임 중 인기 있는 대통령은 아니었고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드물게 재선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퇴임 후 그에 대한 평판은 완전히 달라졌다. 퇴임 이듬해 세운 카터 센터를 바탕으로 평화·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신장, 질병 퇴치를 위한 활동, 국제분쟁 중재에 나서며 퇴임 후 더 빛나는 전직이 됐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봉사단체 해비타트의 사랑의 집짓기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왔고,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카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재평가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한결같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Everyman)’으로 표현한 그는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였지만 정치적 이해에 따라 말이나 행동을 쉽게 바꾸는 많은 정치인들과 달리 평화와 인권에 대한 신념과 실천을 퇴임 이후에도 밀고 나갔다.

평생 기독교 신앙과 가족에 대해 헌신했다는 점 역시 그의 재평가에 일조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그의 신앙이 도덕주의를 강조했던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줬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고향 플레인스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의 주일예배에 늘 참석했고, 95세이던 2019년까지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매주 일요일이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 교회를 방문하곤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의 사망 후 낸 성명에서 “전세계에서 온 수백명의 관광객이 카터를 보려 좁고 긴 교회 의자에 비좁게 앉아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77년간 해로한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경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시했다. 여동생의 친구이자 플레인스 고등학교의 후배였던 로절린 여사와 1946년 결혼한 그는 지난해 11월 아내가 별세한 후 “로절린은 내가 이룬 모든 것에서 동등한 파트너였다”면서 “로절린이 세상에 있는 한 나는 누군가 항상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장례절차가 마무리된 후 플레인스의 집 인근 묘지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6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례에 대한 희망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플레인스는 전직 대통령의 평화로운 고향으로 앞으로도 계속 기억될 듯하다. 반복되는 전직 대통령들의 씁쓸한 퇴장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퍽 부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