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장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야

입력 2024-12-31 00:31

최근 한 달간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11월 말 대비 12월 26일 원·달러 환율은 5.03% 올랐다. 물론 이 상승폭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대외 요인 때문이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향후 관세 인상과 이민제한 정책이 미국의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려 연방준비제도(FRB)의 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전망에 달러 가치는 지속 상승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 달러 대비 원화 가치의 하락폭이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중국 위안화 등 주요 통화들보다 더 컸다는 점은 국내 요인이 원화 가치 하락을 더욱 부추겼음을 시사한다.

이달 들어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으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져 주식시장에서 2조2000억원 이상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며 급등한 원·달러 환율은 지난 27일 국회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15년9개월 만에 최고치인 장중 1486.7원까지 치솟았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까지 출범해 불확실성이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을 고려하면 원·달러 환율이 더 상승해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환율 급등에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외환위기가 아닌 장기 경기침체 가능성이다. 사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과 외환 당국의 대응 여력은 외환위기 가능성을 일축한다. 올해 9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200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며, 단기외채는 외환보유액의 38%에 불과하다. 외환보유액만으로도 만기가 1년 이내인 단기외채를 상환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해외에 지고 있는 빚보다 보유한 자산이 많은 순대외채권국으로, 순대외채권 규모도 9월 말 기준 3780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같은 장기 경기침체로 진입하게 될 위험이 있다. 단기적으로 환율 상승은 수입품의 원화 표시 가격을 높여 물가상승률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늦춰진다면 내수 회복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또한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비용이 증가하면 기업의 경영 성과가 나빠지며 경기침체가 지속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야 대립이 격화되면서 우리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국제 통상질서 변화에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을 놓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장을 견인해 온 수출산업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있다.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 처리가 지연되며 향후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할 반도체산업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쟁국과 기술 격차를 벌릴 기회도 잃고 있다. 또한 중국의 저가 상품 밀어내기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철강산업의 구조조정 기회도 사라지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할 컨트롤타워인 인구전략기획부 설립도 중단되면서 향후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한 대응도 늦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국회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정쟁을 멈추고, 미래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 핵심 산업을 지원하거나 구조 개혁을 촉진하기 위한 법안들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의 미래 경쟁력 확보 정책에 국회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국제 통상질서 재편 속에서 국익을 강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