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충성파 기용·언론 고소하며
취임 일성 묻자 “통합의 메시지 될 것”
취임일, 마틴 루터 킹 기념일과 겹쳐
“진지하다” 평가에도 국민 기대 낮아
취임 일성 묻자 “통합의 메시지 될 것”
취임일, 마틴 루터 킹 기념일과 겹쳐
“진지하다” 평가에도 국민 기대 낮아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줄 메시지가 있다. ‘통합’이다. 우리나라를 하나로 모으는 일에 대한 것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NBC방송 인터뷰 중)
오는 20일 미국 새 대통령 취임식이라는 지상 최고의 정치 이벤트가 거행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7년 1월 취임식 이후 8년 만에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제47대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게 된다. 취임식은 통상 부통령 취임 선서, 대통령 취임 선서, 취임 연설, 서명식, 행진 순으로 진행된다. 트럼프 정권 인수팀은 역대 최대 규모의 성대하고 화려한 취임식을 예고했다.
트럼프 취임위원회는 지난달 기준 취임 기금 1억5000만 달러(2200억원)를 모금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모금한 6200만 달러의 3배에 육박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등이 100만 달러씩을 기부한 상태다.
취임식의 하이라이트는 트럼프의 취임 연설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취임식이 ‘통합(Unity)’을 주제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NBC 인터뷰에서 취임 연설의 주제를 묻는 말에 “통합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그것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분열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트럼프가 ‘통합’을 두 번째 취임 메시지로 던지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2017년 트럼프 1기 취임식의 테마는 ‘고유한 미국(Uniquely American)’이었고 연설 주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였다. 하지만 취임식부터 역대 최악의 분열로 기록될 만큼 혼란스러웠다. 민주당 의원 60여명이 취임식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트럼프의 취임식 당일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워싱턴DC에선 시위대 200명이 체포됐다.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고 선거 전략과 메시지도 국민 통합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랬던 트럼프가 취임 연설 주제로 통합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에 세 차례 출마해 두 번 승리하고 한 번 패배했다. 하지만 선거인단 승리가 아닌 단순 유권자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은 건 이번 대선이 처음이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더 이상 공직에 출마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번엔 정치적 미래에 대한 계산 없이 국민 통합에 나설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주변 인사들도 트럼프의 ‘통합’ 메시지는 진지하다고 말한다. 트럼프 측 여론조사 전문가 존 맥플러린은 NBC에 “트럼프는 뭔가를 말하면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는 미국을 통합하려 할 것”이라며 “트럼프 임기는 이제 단 한 번뿐이다. 그는 역사적인 대통령직을 맡아 국가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비공식 정치 고문 중 한 명인 딕 모리스도 공화당이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모두 승리한 점을 거론하며 “트럼프는 사람들이 양쪽의 갈등으로 지쳐 있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전선을 열 중요한 기회가 왔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트럼프 취임식은 ‘화해와 통합’을 강조한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기념일(MLK데이)과 날짜가 겹친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수정헌법에 따라 4년마다 1월 20일에 열리고, MLK데이는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인데 우연히 날짜가 겹친 것이다.
트럼프 취임식 날 미국 전역에선 킹 목사를 기념하는 행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에 일부 흑인 민권단체들은 트럼프 취임식을 무시하고 킹 목사를 기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킹 목사의 막내딸인 버니스 킹 목사는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레토릭, 이념, 정책을 외면하고 싶은 욕구를 이해한다”면서도 “우리는 그날 트럼프의 연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기대는 높지 않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22일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트럼프가 ‘미국을 통합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변했지만, 59%는 ‘거의 또는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경쟁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자들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긍정 평가한 비율은 31%인 반면 ‘보통이다’는 28%, ‘매우 나쁘다’는 38%를 차지했다.
취임 전까지 트럼프의 행동이 통합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도 많다. 트럼프는 극단적인 충성파 인사들을 내각 각료로 대거 임명했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선 고소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의사당에 난입하며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이들도 자신의 지지자라는 이유로 취임 첫날 사면하겠다고 약속했다. 테드 위드머 뉴욕시립대 교수는 “트럼프가 말하는 통합이 내각에 민주당원을 영입하고 의회에서 민주당과 협력해 미국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법안을 제정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도 그런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며 “그는 내각에 극단주의자들을 지명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민주당 하원의원 12명 이상이 2021년 의사당 난입 선동 등을 이유로 이번에도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