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띄운 원전·방산 ‘좌불안석’… 신재생에너지·카카오는 들썩

입력 2024-12-30 00:00 수정 2024-12-30 00:00
게티이미지뱅크

새해를 앞두고 예상치 못한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 수혜 산업으로 불렸던 원자력, 방산업계 등은 정권 교체 시 혹여 불똥이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반면 현 정부의 핍박을 받았던 신재생에너지 업계, 카카오 등은 분위기 반전을 기대 중이다. 업종·기업 간 유불리를 떠나 정권 교체 시마다 정치권 외풍이 경제계를 뒤흔드는 퇴행적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친원전 정책에 힘입어 사업 확장에 속도를 냈던 두산그룹은 최근 고심이 깊어진 모습이다. 원전·로봇 등 주력 산업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타격을 입었던 두산에너빌리티는 현 정권에서 되살아났다. 체코 정부가 지난 7월 24조원대 규모의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를 선정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 계약 체결에 따라 체코 현지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증기 터빈을 공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상계엄과 탄핵 가결로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향후 원전 사업 수주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내년 3월 정부의 체코 원전 사업 수주 최종 계약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폴란드, 영국 등 추후 진행될 원전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두산로보틱스는 로봇 시장 성장세가 멈칫하며 부진을 털지 못하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10일 합병 철회 이후 탄핵 정국 대응과 추가 투자금 확보를 위한 플랜B 마련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도 현 정부 들어 방산·조선 등 국책사업에서 정부 지원을 크게 받았다는 점에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화는 방산 수출 확대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 과정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입은행 여신 지원 상위 10개 기업의 여신 잔액 26조6392억원 중 한화 계열사인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잔액은 9조5886억원(36%)에 이른다. 한화생명 고문을 맡다가 현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대기 전 실장의 후광도 누렸다는 평가도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현 정권에서 입은 수혜와 관련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반면 현 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는 카카오는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카카오는 지난해 기업명을 거론하며 “부도덕하다”고 한 윤 대통령의 언급 이후 사정당국의 매서운 칼끝을 마주해야 했다. 카카오 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으로부터 수차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여기에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7월 법원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 조종 의혹으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경영쇄신위원장을 구속했다. 카카오 한 관계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대표적인 산업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길 기대하고 있다. 문 정부는 2030년까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끌어올린다는 3020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2022년 정권 교체 이후 에너지 정책의 중심이 원전으로 옮겨가며 신재생에너지 내수 시장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와 발전사들의 재생에너지 전기 의무공급(RPS) 비율을 모두 하향 조정하는 등 정책적 변화가 일어났고, 신재생에너지 관련 업체들은 정책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향 나타났다.

다만 최근 산업부가 내놓고 있는 지원책에 더해 신재생에너지에 비교적 우호적인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업계에선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을 발표하고 재생에너지 입지 발굴·규제 개선·시장제도 개편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의지가 강한 남북경협 관련 기업의 기대감도 커지는 중이다. 7대 대북 사업권을 자산 형식으로 보유한 현대아산은 현재 건설 등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지만 남북경협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아산은 사업 준비를 할 수 있는 발판만 갖춰지면 언제든 사업을 재가동할 수 있는 의지, 능력,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정권 교체로 인해 특정 기업이 살아나고 부침을 겪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CJ그룹은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았고 결국 총수인 이재현 회장이 구속됐다. 재계에서는 당시 CJ, 효성, 롯데그룹이 대표적 사정 대상 대기업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됐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최소 10년 앞을 내다보는 경영 플랜을 짜야 하는데 5년마다 바뀌는 정치 권력 눈치를 보다 보니 한국에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소연한다. 원전 관련 기업 관계자는 “지난 정부 때 죽다 살아났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도 “정권 교체기마다 극심한 외풍에 시달리면 기업이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꾀하기 힘들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글로벌 복합 위기가 코앞인데 정권 유불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송수 백재연 황민혁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