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제르바이잔항공 여객기 추락과 관련해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러시아군 방공 시스템에 의한 여객기 요격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알리예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여객기 추락을 “비극적 사건”이라고 언급하며 유감을 표했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영공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희생자 유족들을 깊이 애도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그로즈니공항 주변이 우크라이나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러시아 방공망이 가동됐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사고 여객기의 추락 배경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날 사과를 통해 러시아군 방공 시스템에 의한 격추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 됐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성명에서 “엠브라에르190 여객기가 외부로부터 물리적·기술적 충격을 받아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며 푸틴 대통령의 사과 발언을 전했다.
아제르바이잔항공 J2-8243편 여객기는 지난 25일 수도 바쿠에서 이륙해 러시아 남부 그로즈니로 향하던 중 항로를 이탈해 카자흐스탄 악타우에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당시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해 67명의 탑승자 중 38명이 사망했다.
아제르바이잔항공과 현지 언론들은 사고 초기만 해도 러시아 민간항공 감시업체의 정보를 근거로 새 떼와의 충돌을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추락 지점이 항로를 크게 벗어났고, 기체 꼬리에 많은 구멍이 뚫린 점 등으로 미뤄 군용 방공 시스템에 의한 격추설이 제기됐다. 백악관도 “사고 여객기가 러시아군 방공 시스템에 의해 격추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초기 징후를 발견했다”며 러시아 정부에 책임을 물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사과를 놓고 주변국에 대한 러시아의 입지가 과거보다 약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이 러시아산 부크 미사일에 격추돼 298명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당시 네덜란드 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도자 3명에게 살인죄를 선고했다. 리처드 기라고시안 아르메니아 지역연구센터장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에 “푸틴의 이번 사과는 예상 밖의 일이며 그의 성격에 부합하지도 않는다”며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