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생산공장을 둔 한국 기업들이 비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 출입국 당국이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활용한 출장 관행에 제동을 걸면서다. ESTA는 한국 국민이 최대 90일까지 비자 없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제도다. 정식 비자보다 발급이 간편해 국내 기업들은 직원들의 단기 출장 때 ESTA를 애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기업 소속 직원들의 ESTA 승인 요청이 거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ESTA로 사업 목적의 방미를 할 경우 단발성 행사·회의 참석으로 입국 목적이 제한된다는 게 미 당국이 내세우는 원칙이다. 미국 공장 관련 업무를 위한 출장 때는 정식 비자를 발급받으라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ESTA 발급에 실패한 직원에게 “미국 내 비자 발급 기준 강화, 미국·한국의 정치 상황 등의 영향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신규 미국 공장인 메타플랜트 조기 가동이 ESTA 심사 강화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메타플랜트 가동 시작이 지난 10월로 앞당겨지면서 당시 현대차 및 유관 협력사의 미국 파견 인력 규모가 빠르게 늘었다”면서 “ESTA 발급량 급증에 경각심을 갖게 된 미 대사관이 이후 더 깐깐하게 심사에 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 기업 출장자에게 미국에서 요구하는 비즈니스 비자(B1) 등은 ESTA보다 승인이 훨씬 더 까다롭다. 발급 비용은 약 10배 비싸고 서류, 면접 등 절차도 거쳐야 한다. 신청자 대비 발급자 비율도 50%를 밑돈다.
기업들은 수율 개선이나 공정 정상화 목적으로 파견 인력이 급히 필요한 상황엔 정식 비자 발급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토로한다. 4대그룹 한 관계자는 29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한국 기업들에 대한 미국의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