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에 범죄자를 파병한 정황이 숨진 병사의 일기에서 확인됐다. 북한의 ‘죄수부대’가 사면이나 감형을 대가로 러시아의 ‘고기 분쇄식 인해전술’에 동원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백악관은 파병 북한군이 세뇌를 당해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특수전사령부는 28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피에 굶주린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지시로 쿠르스크에 갔지만 결국 사망한 북한군 하급 병사 정경홍의 일기”라며 그의 소지품에서 입수한 일기를 공개했다.
정경홍은 일기에서 “나는 은혜로운 당의 품에서 마음껏 배우며 성장했다. 알고 받은 사랑보다 모르고 받은 사랑이 더 많다”며 “조국 방위는 공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이 있어야 나의 모든 행복이 있다. 경애하는 사령관 동지를 지키기 위해 혁명의 군복을 입고 싸운다”고 덧붙였다.
그다음 단락에서는 정경홍의 참회가 등장한다. 그는 “주임상사로 진급할 기회라는 축복이 주어졌으나 당의 사랑도 저버리고 최고사령관 동지에게 배은망덕한 짓을 저질렀다”며 “죄를 용서받을 수 없지만 조국은 나에게 인생의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재생의 길을 열어 줬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승리하고 조국으로 돌아가면 어머니 당에 청원할 것”이라고 일기를 끝맺었다.
일기 내용을 종합하면 정경홍은 북한에서 노동당에 면죄를 약속받고 러시아행을 결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경홍은 하급 병사로 소개됐지만 일기에 ‘주임상사 진급 기회’를 언급한 점으로 볼 때 북한에서 군 복무 중 계급이 강등된 것으로 보인다.
정경홍은 전공을 세워 면죄를 받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작전에서 나는 대오의 맨 앞에 달려갈 것이며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무조건 철저히 따를 것”이라며 “김정은 붉은 특공대의 무패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온 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수전사령부는 정경홍의 일기를 근거로 “북한이 단순한 병사가 아닌 엘리트 전투원을 파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특수전사령부는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정경홍의 시신과 신분증, 그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편지를 공개한 바 있다.
정경홍의 다른 쪽지에서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 드론에 대응해 동료를 ‘인간 미끼’로 활용하는 방법이 기록됐다. 쪽지에서 3명이 한 조를 이루고 그중 1명이 드론을 유인하면 나머지 2명이 사격하는 전술이 그림으로 묘사됐다. 북한군이 러시아의 ‘고기 분쇄기’ 인해전술에 동원돼 막대한 병력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브리핑에서 “북한군이 효과적이지 않은 인해전술을 실행하고 있다”며 “러시아 북한군 지휘부가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북한군 병사들은 공격이 무모하다는 것을 알지만 세뇌된 상태에서 밀어붙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