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네덜란드 북해에 인접한 흐로닝언주 엠스하벤 항구. 약 13㎢(400만평) 들판에 높이 약 100m에 달하는 112개 해상풍력발전기가 위용을 드러냈다. 인근 5㎞ 길이 제방을 따라 거뭇한 태양열 패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었다. 현장을 함께 둘러본 에릭 베르톨렌 엠스하벤 경영 매니저는 “오늘처럼 날씨가 흐린 날은 태양열 대신 풍력이나 미리 저장해둔 에너지를 가동해 전력 수요 공급을 안정적으로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에너지믹스’ 총 집약체인 ‘엠스하벤 에너지포트(항구단지)’를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국민일보가 찾았다.
엠스하벤 에너지포트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풍력발전 단지다. 이곳에서만 네덜란드 전력의 약 3분의 1이 생산된다. 육·해상풍력을 기반으로 태양광, 바이오매스, 석탄·액화천연가스(LNG)와 연계한 수소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원을 운용하고 있어 네덜란드의 ‘에너지믹스’ 정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베르톨렌 매니저는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까지 총 750㎿의 풍력단지 설치를 완료했다”며 “2030년 21GW, 2050년 최대 70GW까지 늘린다는 목표”라고 밝혔다.
엠스하벤 에너지포트의 주요 사업은 해상풍력단지 건설과 이에 필요한 각종 부품을 ‘레고’처럼 조립하는 일이다. 물류, 보관, 향후 유지보수 관리까지 전반적인 서비스와 관련 인프라와 기술력을 갖췄다. 네덜란드를 벗어나 덴마크, 영국, 독일 해역에서도 10.2GW 규모의 총 22개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사업도 진행 중이다. 베르톨렌 매니저는 “바다 위에서 풍력발전을 안정적으로 떠받치는 ‘모노파일(지반 역할을 하는 부품)’을 나르고 조립하는 기술은 전 세계에서 엠스하벤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엠스하벤 에너지포트는 ‘도시 없는 항구’ ‘24시간 경제항구’로도 불린다. 1973년 처음 지어질 때부터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곳이 입지로 채택돼 오로지 ‘에너지 생산’ 목적으로만 기능한다. 임직원 1000여명은 자동차로 10분 남짓 떨어진 인근 마을에 주로 거주한다.
주민 갈등 없이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베르톨렌 매니저는 “영국의 헐은 과거 가난한 도시였지만 독일 지멘스 등 대형 터빈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하며 도시 전체가 발전했다”며 “(풍력발전 단지로) 경제가 성장해 지역을 도와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엠스하벤 포트는 향후 네덜란드의 수소 생산 핵심 허브로도 떠오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수소 인프라의 기반인 해상풍력 기술을 이미 갖추고 있어서다. 현재 5000만 유로(한화 약 757억원)를 투자해 화학공장이 몰려 있는 인근 델프자일 항구단지와 엠스하벤 포트를 잇는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델프자일 공장의 블루수소(LNG 등 화석연료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해 탄소배출을 줄인 수소)가 엠스하벤 포트로 운반된다.
네덜란드 정부도 2020년 3월 이래 수소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2003년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수소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네덜란드 정책 전문가들은 이 같은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할 때 ‘당근과 채찍’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핀스트라 네덜란드 기후녹색성장부 국제 수소 프로그램 선임정책자문관은 “네덜란드 정부는 보조금과 기업에 가하는 규제를 결합해 단기적으로는 수소기술 개발과 시장 조성, 장기적으로는 수소 시장의 완전한 자립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엠스하벤·헤이그=글·사진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