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20) “먼저 베풀면 그만큼 돌아온다” 일찌감치 깨달아

입력 2024-12-30 03:05
최경주 장로가 과거 출전한 한 대회에서 드라이버 스윙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어린 나이에 공짜로 무언가를 해주는 게 아깝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단 한 번도 아까운 적이 없었다.” 내가 자란 시골은 동네마다 문이 열려 있으면 누군가 닫아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웃이 고구마를 캐야 한다고 하면 40명씩 다른 동네에서 와서 힘을 보태 오전 중에 싹 도와줬다. 그다음에는 다른 집으로 가 배추를 뽑아주며 품앗이하듯 일손을 보탰다.

하루는 아버지가 힘들어하셔서 “경주야, 니 저 동네 누구누구네 집에 가서 밭 4마지기 로타리(논을 고르는 일)를 치면 돈을 줄 거니 도와주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로타리를 다 쳤다. 밭 4마지기를 치려면 6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그 어린 나이에 혼자 가서 다 하고 왔지만 아버지는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았다.

하루는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부지. 그 밭 누가 갈았어요.” “니가 했지.” “그러면 돈은 누가 받아야 합니까.” “야, 그거는 내거로 니가 했으니까 그게 다 아부지 거지.” “그라믄 다음부터 사람을 써서 하시랑게요. 그러면 아부지가 60%를 갖고 40%는 일꾼한테 줄 텐데 그렇게 하려면 하시랑게. 나는 20%만 받으면 충분하당게요.” 나는 아무리 아들이라도 정확히 내가 일한 몫에 해당하는 품삯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협상을 잘했다. 적당히 바랐다. 내가 원하는 건 10%에서 15%, 많아도 20%였지만, 그마저도 안 주면 내가 돈을 건넬 때 미리 빼고 줬다.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그대로 부모님께 갖다 드렸다. 프로가 돼서도 마찬가지다. 우승 상금을 받아도 그대로 아내에게 가져다 줬다. 한 번도 내가 먼저 봉투를 열어본 적이 없다. 이런 습관은 완도에서 살았던 어릴 때부터 이어져 왔다.

여느 시골 사람처럼 돈에 욕심이 없었다. 자연이 주는 대로 흥할 때도 있고 흉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잡은 고기를 나눠 먹고 동네 어른들 노동을 도울 때 쌀 한 가마니를 갖다 주고, 잡은 물고기는 우리끼리 나눠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돈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 오가며 농사일을 도왔다. 그래서 어릴 때 일찌감치 깨달았다. 내가 먼저 남을 도우면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영어로 말하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인데 여기에서도 기브가 먼저 나온다. 내가 먼저 베풀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먼저 주라는 복음을 알려주시지 않았나.(행 20:35) 지금도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돕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