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가 거침이 없다. 2기 내각 구성을 당선 17일 만에 마치고 관세,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거론하며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이익을 공세적으로 추구하기 위한 움직임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귀환이 국제 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국제 질서는 ‘미·중 중심의 양극체제’가 ‘미국 우위의 다극체제’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은 이러한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찰 역할을 수행할 미국의 ‘역량’이 감소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재등장은 미국의 ‘의지’를 한층 더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변화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두 개의 중동 전쟁을 치르며 가시화했다. 전쟁의 장기화로 큰 손실을 입은 미국 경제는 2008년 찾아온 금융위기를 겪으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후 미국은 국내적 역량 회복에 집중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담보하며 국력의 내실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부각된 자국 중심주의 성향은 미국 이익 우선, 세계 경찰 역할에 대한 회의적 입장, 양자주의 선호, 국제적 협력 후퇴 등의 특징을 나타내며 미국의 변화된 모습을 선명히 보여줬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중심 국제 질서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자국 이익 중심주의 및 각자도생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이익을 공세적으로 추구하는 대외정책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 폐기와 글로벌 리더십 복원’을 주장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특히 장기화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에 직접적인 개입을 회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미국의 모습은 패권국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현실을 확인시켜줬다.
이러한 미국의 공백을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부활이 메우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토대로 미국의 경쟁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를 양극체제로 변화시키며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영원한 제국’ 러시아의 부활은 미·중 중심의 양극체제를 다극체제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강대국의 군사력 행동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억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도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 질서의 변화가 여타 강대국들에 대한 미국의 상대적 우위가 상실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록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역량과 의지가 감소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장기화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을 통해 확인되었듯 전 세계에 공공재를 제공하고 복잡한 국제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국가는 여전히 미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전략적 환경 및 상황의 변화로 인해 미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힘의 공백 상태를 메우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국가가 아직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향후 국제 질서는 미국 우위의 다극체제가 공고화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며,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재입성은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주된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통해 현실주의적 외교 정책이 미국 대외 정책의 기조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것이며, 따라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리더로서 미국의 모습은 한동안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