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외면일기’에 썼던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는 말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연말의 센티멘털함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문장이 됐다. 연말은 우리 삶의 일상적인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독특한 시공간이다. 반짝이는 조명들이 들어찬 거리, 잦은 만남으로 들떠 있는 사람들,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시기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새로운 시작을 향한 기대와 설렘 등 복합적인 감정과 풍경이 혼란하게 뒤섞여 있는 이 시기를 누구나 예외적인 기분으로 지나가는 듯하다.
최근에 만난 여러 사람들로부터 연말 특유의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고 덤덤히 지나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멜랑콜리한 기분은 섬세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동시에 얼마간 안락한 일상이 보장됐을 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우울감’이 잉여시간 확보가 가능해진 산업혁명 시대 이후에 주목받기 시작했다니 내가 속한 세계와 삶이 온전치 않을 때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처절한 생존의 장인 전쟁터에서 멜랑콜리한 감정을 세심하게 느끼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일종의 진공 상태처럼, 이도 저도 아니기에 조금은 여유롭고 감상적인 마음으로 지날 수 있었던 연말을 우리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로 맞이하게 된 것 역시 어지러운 한국 사회의 세태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의 복잡함과는 무관하게 겨울의 햇볕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강렬하게 세상을 비춘다. 얼지 않은 강은 반짝이고 바다에는 거친 파도가 친다. 소나무는 추위 속에서도 푸르다. 길동물들은 자신의 생명력으로 매서운 날씨를 이겨내며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라는 것은 이 모든 풍경들이 다채롭게 섞여 있는 공간이다. 우리에게는 힘이 있고, 자연에게도 힘이 있다. 우리의 힘과 자연의 힘은 얽힌 채로 하나의 세계가 된다. 어려운 시기에도 그 사실을 떠올리면 위안이 된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