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26일 대국민 담화는 국무총리실 고위급 인사들도 대부분 몰랐던 갑작스러운 발표였다. 내부에서도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시 파장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나왔지만, 한 권한대행은 결국 “여야 합의가 없으면 임명도 없다”는 뜻을 생방송으로 직접 국민에게 전달하는 길을 택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국민 담화에서 “권한대행은 나라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전념하되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가 국정 연속성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50년 이상 공무원으로 지낸 ‘늘공’(직업공무원) 특유의 고집이 드러난다는 해석도 있다.
앞서 총리실을 비롯해 정부 내에서도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는 위헌 논란이 있는 ‘쌍특검’(내란·김건희 특검) 법안과 달리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권한대행은 공직생활 막바지에서 ‘오랜 관례’를 깨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데드라인’을 정해 헌법재판관 임명과 특검법 공포를 요구하는 데 대해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는 의사도 주변에 보였다고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이) 아직 법률 검토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이 탄핵으로 압박한다고 해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게 맞느냐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헌법재판관 임명은 정해진 기한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도 담화에서 “제대로 답을 찾지 않고 결론을 내라는 말씀에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를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여당의 반대 입장은 이미 확고한 터라 담화는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탄핵의 바람을 맞더라도 갈 길을 가겠다는 한 권한대행의 의지가 너무 확고했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27일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권한쟁의심판 등 법적 대응에 나서지 않고, 직무정지 상태에서 탄핵심판 준비에 들어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자진 사퇴도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권한대행이 탄핵소추 되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을 맡게 되지만, 최 부총리 역시 ‘쌍특검 공포 및 헌법재판관 임명’에 응할지 불투명하다. 국무위원 ‘연쇄 탄핵’의 불씨는 계속 남아 있는 셈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