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추락해 최소 38명의 사망자를 낸 아제르바이잔항공 여객기 사고의 원인을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초기 원인으로 지목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먼 곳에 비상 착륙한 마지막 운항 경로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러시아 방공 시스템이 사고기를 우크라이나 드론으로 오인해 격추시켰다는 분석도 나왔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검찰은 “사고기 잔해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했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 검찰도 사고 현장에 조사단을 급파했다. 아제르바이잔 검찰총장실 대변인은 “무엇도 단정할 수 없다”며 “카자흐스탄 검찰과 긴밀히 협력해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객과 승무원 67명을 태운 아제르바이잔항공 J2-8243편 여객기는 전날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시로부터 3㎞ 떨어진 곳에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사고조사위원회를 이끄는 카나트 보줌바예프 카자흐스탄 부총리는 “최소 3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 APA통신은 “병원으로 이송된 생존자 29명 중 11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항공과 현지 언론들은 전날만 해도 러시아 민간항공 감시업체의 정보를 근거로 새 떼와의 충돌을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버드 스트라이크만으로는 사고기의 운항 경로나 기체의 파손된 형태가 설명되지 않는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고기가 이륙한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와 착륙 예정지였던 러시아 남부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는 모두 카스피해 서쪽에 있다. 반면 비상착륙 지점인 악타우는 카스피해 동쪽 연안 도시다. 미국 항공 자문사 에어로다이내믹어드바이저리의 분석가 리처드 아부라피아는 “조류와 충돌한 비행기는 일반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착륙한다”며 “사고기가 통제력을 잃었을 수도 있지만 항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새 떼와의 충돌을 원인으로 특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항공 역시 사고 초기 버드 스트라이크를 원인으로 발표했다가 지금은 철회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허위정보대응센터의 안드리 코발렌코 센터장은 엑스에서 “사고기가 우크라이나 드론으로 오인돼 러시아 방공 시스템에 의해 격추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은 체첸공화국에 방공 시스템을 가동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고 당일에도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드론 59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며 “그중 하나는 사고기 추락 3시간 전에 격추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항공보안 업체 오스프리플라이트솔루션의 최고정보책임자 맷 보리는 “잔해의 형태와 러시아 남서부 상황을 고려하면 대공포에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