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에 책임 떠넘긴 韓 대행… 그래도 ‘줄탄핵’은 안 된다

입력 2024-12-27 01:30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로 인한 정국 혼란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이르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한 대행이 어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 합의가 없는 한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에 대한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이날 민주당 등 야당은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에서 헌법재판관 3인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헌재 재판관과 관련해선 여당이 3인 추가 임명은 위헌이라며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여야 합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 대행이 정치권의 합의를 재판관 임명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본인의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다. 애당초 헌법학계에선 이번 3인은 국회 몫 재판관이라 대통령이든 권한대행이든 국회 의결 후 임명 행위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많았다.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한 대행에게 임명권이 있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 대행은 헌재를 온전한 9인 체제로 만들어야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뒤에도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날 국회 의결로 한 대행이 그런 체제를 만들 수 있게 됐는데도 이를 회피한 것은 역사적인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한 대행의 그런 태도는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대행 체제 출범 2주 만에 또다시 탄핵안이 통과된다면 국정 불안은 더욱 커질 게 뻔하다. 한 대행 탄핵안 가결 정족수가 200명에 못 미치면 정족수가 대통령 탄핵 기준(200명 이상 찬성)이냐, 국무총리 탄핵 기준(151명)이냐는 논란도 예상된다. 그런 혼란 상황은 가뜩이나 추락한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더욱 떨어뜨리고, 금융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도 있다. 헌법에 따라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행을 이어받더라도 총리를 두 번 역임한 한 대행만큼 국정 장악력이나 대내외 위상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우려들을 감안하면 여야가 헌법재판관 임명이나 내란 특검 및 ‘김건희 특검’을 둘러싼 이견을 하루빨리 해소해 한 대행 탄핵소추는 피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그러려면 한 대행 탄핵소추를 미루고 당장 오늘이라도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재판관 임명과 특검 문제를 일단락지어야 한다. 여당은 민심을 직시해 헌법재판관 임명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하며, 야당은 두 특검이 가진 위헌적 요소 제거 및 수사 범위 축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정도 정치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면 정치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여야정 모두 정략이나 미래 이해득실보다 국정을 안정시키는 일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