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탄핵 정국마저 망가뜨리는 정치

입력 2024-12-27 00:50

국정 수습 시급한 이 시국에도
尹 탄핵 vs 李 선고 ‘시간 싸움’
급기야 권한대행 탄핵 사태의
수렁을 향해 치닫고 있다

망가진 정치에 이스라엘 국민이
전쟁 소용돌이 내몰렸듯
우리도 한국 정치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내 삶을 위협하는 정치
확 바꿔내려면
국민이 더 크게 목소리 내야

지금 정치권이 벌이는 논쟁에선 12·3 비상계엄 이후 내가 매일 느끼는 위기감이 보이지 않는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경제의 모든 수치와 전망이 하루아침에 외환위기 시절처럼 어두워졌다. 안보를 책임질 군은 쑥대밭이 됐고, 세계질서가 뒤바뀌는데 외교는 멈춰 섰다. 정부가 하겠다던 일은 무엇 하나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안 그래도 팍팍한 삶에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정상화’라던 비상계엄은 나라를 거덜 내는 짓이었다. 그 날벼락을 맞은 국민이 불안 속에 지켜보는 상황에서 여야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을 놓고, 권한대행 탄핵의 정족수를 놓고 다투고 있다. 계엄 사태가 터진 지 한 달,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 보름이 돼가지만 무너진 국정과 흐트러진 삶을 어떻게 바로잡을 건지, 정치판에선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권이 없다는 국민의힘 주장은 탄핵심판에 거는 딴지에 불과하다. 헌재도, 대법원도,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자도 다 임명할 수 있다는데, 권한쟁의심판까지 예고하며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공정성을 위한 재판부 9인 체제를 가로막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 한다. 탄핵 정국을 국정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이재명 선고’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쓰려는 것이다.

권한대행을 탄핵해 대행의 대행 체제를 만들겠다는 더불어민주당 발상은 미친 소리로 들렸다. 휘청대는 한국 경제의 등에 칼을 꽂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계엄 사태로 추락한 국가신인도를 바닥까지 끌어내려 더 큰 후폭풍을 부를 것이다. 엄포라도 해선 안 될 말을 버젓이 꺼내고 기어이 탄핵안을 발의한 그들의 시선은 어떻게든 이재명 선고 전에 대선을 치르는 데 맞춰져 있다.

탄핵소추 이후 정치권에서 나온 긍정적 소식은 여·야·정 국정협의체 합의가 유일했는데, 이런 정쟁 속에 26일 첫 회의부터 열리지 못했다. 여당도 야당도 국민은 안중에 없다. 지난 2년 반 동안 해온 윤석열 탄핵과 이재명 재판의 시간 싸움을 국난의 상황에도 계속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경제지표가 안정을 되찾고 해외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치켜세운 것은 절차적 잡음 없이 예측 가능한 나름의 질서가 유지된 까닭이었다. 지금의 탄핵 정국은 불확실성이 거꾸로 커져만 간다. 정치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임명권 논쟁에 탄핵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할 수 없게 만들고, 특검법 논쟁에 내란 수사가 어찌 될지 가늠키 어렵게 하더니, 급기야 권한대행을 탄핵한다는데 몇 표가 나와야 탄핵이 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을 빚어냈다.

비상계엄 사태는 망상에 가깝도록 왜곡된 윤 대통령의 인식이 초래했다. 미숙한 정치인은 많지만 이렇게 기괴한 일을 감히 실행하는 이는 없었으니, 분명 그 인물의 결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탄핵소추로 그를 국정과 격리했는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주가 지나도록 국정이 수습되기는커녕 권한대행 탄핵의 더 깊은 수렁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서는 문제, 더 이상 정치라 부를 수 없는 정치판의 후진성이 이 사태를 함께 불렀음을 말해준다.

석 달 전 이 지면에 쓴 ‘망가진 정치가 부른 전쟁’은 이스라엘 얘기였다. 이스라엘 국민이 난데없는 외침에 속수무책 당하고 1년 넘게 전쟁에 휘말린 배경에는 네타냐후 총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진영 대결과 국론 분열이 있었다. 전쟁을 부른 이스라엘 정치의 난맥상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과연 한국 정치로부터 안전한가?’ 자문했는데, 답이 명확해졌다. 안전하지 않다. 지금의 정치는 세계 10위권 경제를 하루아침에 외환위기 수준으로 끌어내릴 만큼, 국제사회 선도 국가를 왕따 국가로 전락시킬 만큼, 열심히 살아가던 국민을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위기로 내몰 만큼 위험하다.

이 지경이 된 원인을 많은 이가 ‘87년 체제’에서 찾고 있다. 민주화가 너무 급해 그 이후의 문제를 살피지 못했던 헌법, 그때 남겨둔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선거제의 권력구조를 뜯어고쳐 정치를 바꾸자고 한다. 그래야 한다는 건 다 알고 있었다. 개헌의 골격도 이미 준비돼 왔다. 국회의원들이 안 했을 뿐이다. 지금 행태를 보면 이번에도 하려 들지 않을 듯한데, 허접한 정치가 내 삶을 망가뜨리는 이 억울한 상황을 더는 겪고 싶지 않다. 다들 더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왔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