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시대정신과 조화를
이뤄야 비극 반복되지 않아
자유,평화의 미래 향해야
이뤄야 비극 반복되지 않아
자유,평화의 미래 향해야
1950년 봄에 태어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같은 해 여름, 그의 아버지는 경찰의 소집 통지를 받고 집을 나섰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960년 4·19혁명의 여름,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에서 발견된 집단 학살의 유골 더미 속에 그의 아버지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구덩이의 어떤 유골이 그의 아버지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열 살이 된 소년은 그때 처음으로 ‘보도연맹’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그 단어는 줄곧 그의 인생을 따라다녔다. ‘빨갱이’ 자식은 취직도 안 되고 해외에도 못 나간다는 수군거림과 ‘아비 없는 자식’ 소리 듣지 않도록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는 모친의 당부를 들으며 성장했다. 중학교 졸업 후 사회로 나와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고, 7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자신을 손가락질했던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성공했다.
그런 삶을 살아온 그의 말은 이 세대의 집단적 공포와 신념을 보여준다.
“나라가 어지러워 공산당 세상이 될까 걱정이다.” “가난을 없앤 박정희야말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다.”
이런 인식은 그가 살아온 역사와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그런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성장했다. 가해의 논리에 동조하는 듯 보이는 그의 태도는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가 알기로는 부친은 ‘진짜 빨갱이’도 아니었다(그렇다면 그의 부친은 더더욱 억울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아닌가!).
우리는 이 사람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 그리고 그 비극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흔적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 그리고 세대 간 극단적 갈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억압과 독재, 가난 극복을 위한 개발주의는 한 세대를 단련시켰지만 동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이 권력과 부를 누리고, 독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담론이 오랫동안 유지됐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후 세대는 그들 나름의 가치와 믿음을 형성했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공산당 세상이 될 것이라는 걱정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념이 아니다. 그것은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 그리고 개발독재를 거치며 형성된 한 세대의 집단적 경험이다. 이 세대는 가난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고, 그 과정에서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확신과 두려움이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성과를 누리는 그들은 절대 빈곤의 공포를 체감한 적이 없다. 독재와 억압의 경험에서 자유로운 그들은 일방적인 통제와 국가주의적 강요를 공감하기 어렵다. 이 간극이 세대 간 갈등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는 현재의 기준과 맥락에 의해 해석되고 새롭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역사에서 배우되 그것이 그들만의 폐쇄적인 교훈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특히 그것이 시대정신과 괴리될 때 더 큰 갈등을 초래할 수 있고, 세대 간 단절을 심화시킨다.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과거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새로운 세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역사의 교훈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갈등을 악화시킨다. 하지만 과거의 비극적 경험과 현재의 도전 사이에서 공통된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공존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과거의 상처와 교훈을 자신들만의 닫힌 틀에 가두고 세대 갈등을 심화시키는 길, 혹은 그것을 오늘날의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로 확장하는 길. 역사를 기억하되 그것을 시대정신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활용할 때 비극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역사를 단순히 과거로 박제하지 말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나침반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유와 다양성, 공존과 평화의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허영란(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