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일, 이날은 45년 전 신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난 날이요, 내란 수괴 혐의로 입건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정당화’를 강변하는 담화를 발표한 날이었다. 이날 한 설문조사 기관은 12·3 계엄 이후 ‘계엄 트라우마’가 있다고 답한 국민이 66%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 국민은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일상용어처럼 쓰기 시작했다.
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다양한 정신적 외상을 겪은 이들을 치유하는 상담 전문가로 살아 왔다. 일반인들은 ‘트라우마 스트레스 반응’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혼동하기 쉽다. 45년 전 계엄군들의 발자국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는 광주시민들은 12월 한밤중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로 진입하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과호흡 증상을 경험했다. 이는 ‘트라우마 스트레스 반응’이다. 이런 반응이 무조건 장애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신(神)은 인간을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회복하도록 만드셨다.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극단적인 공포를 경험하면 포유류나 파충류처럼 ‘도망하거나 맞서는 반응 모드’ 혹은 ‘죽은 척, 얼어붙는 방어반응’으로 대처하도록 발달돼 왔다고 주장한다. 파충류의 경우 생명에 위협을 감지할 때 죽은 척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던 반응이 우리 인간 몸에도 유사하게 남아 숨이 막히고 몸이 굳는 ‘부동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 반응이 반드시 영속적인 건 아니다. 충분한 안전감이 제공된다면 스트레스 반응은 서서히 자연 감소한다. 특히 인간에겐 타인과 공감하는 애착이 회복을 가능케 하는 필수 자원이다.
대한민국은 많은 외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아시아의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성장했다. 겉보기엔 ‘한강의 기적’은 고속성장의 훈장처럼 보였다. 최근 문화예술인들은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을 통해 기적 뒤에 숨겨진 고통을 전 세계에 용기 있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이란 포장지를 살짝 걷어내자 참담한 폭력과 아픔의 속살이 드러났다.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보여줬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한강의 작품은 그저 5·18과 같은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고발문학이 아니었다. 한 평론가는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고통을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 ‘찔리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고백한다. 독자를 트라우마 고통 그 자체에 빠져들게 만드는 그만의 마술이었다.
현대 심리치료에서 트라우마 장애를 온전하게 치유하고자 할 때는 고통의 기억을 망각하거나 통각을 무디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장애로만 여겨 약물치료로 증상만 완화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트라우마 고통을 용기 있게 마주할 때 서서히 타인과 세상과 새롭게 관계 맺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우리가 모두 충격 가운데 경험한 집단적인 트라우마는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세계도 함께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국민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면서도 신구 세대가 함께 소통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온 세계에 보여주었다. 한강 작가는 수상의 의미를 폭력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과 나누기 원했다. 2024년 12월 광장의 응원봉과 선결제로 상징되는 비폭력 시민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더불어 온 세계에 K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준 사건이야말로 주권자들이 이룬 ‘외상 후 성장’이요,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이었다. 아직도 어두운 밤, 우린 이 기적의 불씨를 이어가야만 한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