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팬케이크 한 조각의 기쁨

입력 2024-12-27 00:33

크리스마스이브부터 31일까지. 이 시기에 들어서면 좀체 마음이 한자리에 있지 못한다. 화려한 오너먼트, 색색의 알전구를 매단 트리가 반짝이는 거리로 나가고 싶다. 상쾌하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밤의 궁궐도 거닐고 싶다. 하지만 분주한 머릿속과 달리 내 몸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폭신한 무릎담요를 덮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뭔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연말을 보내기에는.

입이 심심해서 냉장고 문을 연다. 괜히 집안에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싶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절기에 맞춰 동지가 오면 팥죽을 쑤고, 봄이 오면 진달래를 따다가 화전을 부치며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겼나 보다. 나는 팬케이크를 만들기로 한다.

녹인 버터에 우유를 넣고 섞는다. 거기에 살짝 되직한 팬케이크 반죽을 붓는다. 반죽을 한 국자 떠서 30㎝ 정도 높이에서 팬 위에 붓는다. 그렇게 하면 완벽한 원형에 가까운 팬케이크를 구울 수 있다. 팬케이크를 구워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기다리는 일과 같다는 것을.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미음을 먹이기 전에, 후후 입김을 불어서 식혀주듯이 찬찬해야 한다는 것을. 약한 불로 은근히 굽다가 이윽고 표면에 작은 구멍이 퐁, 퐁 올라온다. 그때 단 한 번, 반죽을 뒤집는다.

토핑은 뭐가 좋을까? 땅콩버터를 바른 바나나는 향긋하다. 새콤한 딸기와 생크림의 조합은 색감만으로도 보기 좋지만, 휘핑크림을 만들기 성가시다. 슈거파우더를 톡톡 두드려 블루베리 위에 뿌린 뒤, 메이플 시럽을 뿌려줘도 좋겠지. 하지만 나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쓰기로 한다. 키위를 자르고, 무화과 크림치즈를 꺼낸다. 따끈하게 구운 팬케이크 위에 버터 조각이 미끄러지듯 녹는다. 꿀을 뿌리고, 큼직하게 잘라 문다. 비로소 내 혀는 순수하게 음미할 준비를 마쳤다. 한 조각의 기쁨을 맛본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