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에벳멜렉의 믿음

입력 2024-12-28 03:03

2016년 한 방송국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5명의 실험 대상 중 4명은 사전에 약속된 방송국 제작진이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한 명이 참가했습니다. 감독관이 10분 동안 문제를 풀라고 하고 나갔는데 매캐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밖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당황한 학생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반응이 없자 계속해서 문제만 풀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다른 사람들이 다 가만히 있어서’라고 답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다른 사람과 상황,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선택이 옳을까’라는 생각보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다수의 사람은 어떻게 하나’에 더 신경을 씁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고 이스라엘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2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결국 고관들이 시드기야 왕을 찾아가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왕이 허락하자 고관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왕자 말기야의 집에 있는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구덩이(6절)는 우기 때 빗물을 모았다가 건기에 짐승과 사람이 마시는 물을 저장하는 탱크입니다. 구덩이는 상당히 깊어서 이곳에 갇힌 사람은 힘이 빠지고 질식해 죽게 됩니다.

이 위기의 순간 등장한 인물이 에벳멜렉입니다. 에벳멜렉이라는 단어 자체는 ‘왕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고유한 이름이라기보다 직함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는 구스(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유다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내시였습니다. 왕의 곁에 있는 고위직이지만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인정받지 못할 사람입니다. 이런 에벳멜렉이 시드기야 왕을 설득하자 시드기야가 이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구하도록 명령합니다.(10절)

모두가 예레미야를 적으로, 반역자로 간주하는 상황에 예레미야를 위해 나섰던 에벳멜렉을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렘 39:17)고 에벳멜렉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벳멜렉은 누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족보나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만 이룬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사명을 계속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에벳멜렉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눈치 사이에 갈등하는 일이 생긴다면 용기 있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반대로 누군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도 에벳멜렉처럼 그 곁에 함께 서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만 모여도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친구이자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주님을 닮아가는 이 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올해 설립 92주년을 맞은 서울 용산구 만리현교회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입니다. 조준철 목사는 연세대 신학과와 서울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2020년부터 만리현교회 담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