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유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듯 우리도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있는 사막의 외로움을 보고 있다. 새해에도 재정 관계 건강의 어려움이 이어질 것이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라는 한탄마저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시 13:1~2) 새해가 밝아오는데도 옛 형제자매들처럼 신음한다.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십니까.”(출 14:11, 새번역)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새해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슬픔과 실망과 끊임없는 다툼이 가득 찬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노래를 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새해가 올해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을 조금만 움직이셔도, 우리를 위해 조금만 예비해 주셔도, 은혜와 권능의 하나님 역사는 너무나 크고 신비롭게 움직이는 것을 보아 알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우선 만나를 찾아 나서는 열심을 내보라. 불평만 하지 말고 아침마다 문밖으로 나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찾아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가 비처럼 광야에 내릴 것이라고, 긍휼이 그들의 장막 문 앞에 룸서비스처럼 아침마다 새롭게 쌓일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당신에게도 해당한다.
당신이 딛고 서 있는 발아래를 내려다보라. 당신의 삶을 위해 일용할 작은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아름다운 일출, 뜨거운 커피 한 잔, 작동하는 컴퓨터, 문자를 보내오는 친구…. 하찮은 선물은 없다. ‘만나’라 이름 붙이라. 오늘 하루치 영양분에 감사하라.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1) 모세와 미리암은 홍해 옆에서 외쳤던 이 말을 40년간 광야를 걸으면서 몇 번이나 더 감미롭게 노래했을까. 먼지가 발을 덮고 밀려오는 모래바람이 눈 앞을 가릴 때, 이 말은 그들을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게 하는 리듬이 되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모세와 미리암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할 수 있다. 새해에 하나님께서 크게 움직이시기를 갈망하는가. 당신의 고통에 함께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슬그머니 의심하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려고 씨름하고 있다면 당신의 ‘홍해’를 기억하라. 당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했던 옛 노래를 다시 불러라. 지난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예비해 주셨던 일들을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에게 들려주라. 눈앞에 질고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 보여도 끝은 있다.
끔찍한 뉴스가 매일 올라온다. 사람들이 죽고 전쟁과 기근이 온 세상을 할퀴고 있다. 이런 삶을 바라보고 있자면 절망에 빠지기 쉽다. 엉망이 된 이 현실을 도대체 하나님은 어떻게 바로 잡으시려는 것일까. 절망이 밀려올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야에서 절박하게 부르짖은 모세의 믿음을 가지라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말씀하신다. 일용할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구원의 하나님,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 말씀하신다.
새해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일하실 것을 기대하는가. 아니면 기대치를 낮추는 것으로 실망을 사전에 회피할 것인가. 당신의 기도는 절망의 한탄뿐인가. 새해로 첫걸음을 들여놓을 지금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진다면 기억하라. 이 어려움 한가운데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케 하신다. 당신도 바위에서 물을 기대할 수 있다. 체념과 비관주의가 새해를 채우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걸으신다. 우리 옆에서 동행하신다. 새해로 발걸음을 옮겨 놓는 우리에게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클라리사 몰은 비영리단체를 위한 자선 모금가이자 작가로 슬픔의 여정을 걷는 사람들과 동행하기 위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