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길었던 이상기후 탓에 패션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쳤다. 시즌마다 준비한 신제품은 예측불가 날씨 탓에 재고로 쌓이고, 단가가 높은 겨울옷은 따뜻한 겨울을 맞으며 판매가 저조하다. 패션업계는 날씨에 대응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며 기후대응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도 패션업계는 1~2%대 저성장이 전망된다.
25일 삼성물산패션부문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패션 소매판매액은 약 68조원으로 지난해보다 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발·가방 등을 제외하고 의류로만 한정하면 -0.2%의 신장세를 기록했다. 3분기 의류·신발 소비 비중은 역대 최저 분기 기록을 세웠다. 통계청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온라인에서조차 패션 거래액이 전년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경기침체를 실감할 만한 수치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무더위가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11월까지도 반팔을 입을 수 있을 만큼 더위가 길었다. 이는 간절기 의류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여름, 겨울, 그리고 봄·가을의 구분에 따라 신제품 출시 계획을 짜는데 모든 게 부질없어진 상황”이라며 “지금의 변화무쌍한 기후에 대응하려면 다른 수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몇 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 의식으로 ‘기후 변화 TF’도 등장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주요 패션 협력사 15개사와 한국패션산업협회, 현대백화점 패션 바이어 20여명으로 구성된 ‘기후변화 TF’를 업계 최초로 출범했다. 기존의 사계절 구분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시즌의 기준을 재정립하고, 선제적으로 판매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특히 여름 시즌을 세분화해 생산·판로·프로모션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협력사는 냉감 소재를 적용한 기능성 의류나 간절기 상품 등 세부 시점 주력 아이템 물량을 늘리고, 백화점은 프로모션이나 대형 행사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길어진 여름을 세밀하게 대응해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출범 이유에는 동의하지만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선제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기존처럼 할인전이나 기획전 등 행사 기간을 날씨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해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유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생산 물량을 정교하게 조절하거나 프로모션 시점을 정확하게 정하려면, 연간 날씨를 예측해야 하는데 당장 내일 날씨도 알 수 없지 않나”라며 “최대한 발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고 했다.
가격 인상에도 성장하던 럭셔리 시장도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저성장이 예고된 패션 시장과 의류 소비심리는 지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며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는 와중에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등으로 내년은 성장이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