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예술이었던 한·일·중 ‘차·향·꽃 취미생활’

입력 2024-12-27 00:26
“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하던 청나라 건륭제가 중추절에 달을 감상하는 모습을 그린 ‘건륭 상월도’. 건륭제 옆에는 각종 다구(茶具)가 갖춰져 있어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글항아리 제공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은 많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책은 그중 차와 향, 꽃 등 취미 생활에 집중한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고고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며 신안 해저문화재를 연구해 온 저자는 차·향·꽃이 시대별, 국가별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것을 담았던 그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다룬다.

대부분의 것이 그렇듯 시작은 중국이다. 차는 중국에서 시작됐다. 달마 대사는 면벽 수도를 하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해 눈꺼풀을 떼어 땅에 버렸는데 그 자리에서 차나무가 자랐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우연히 찻잎이 떨어진 물을 마신 뒤 정신이 맑아져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차 문화는 삼국시대 한국으로 전해졌고 다시 일본으로 전파됐다. 향과 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먼저 관심으로 가졌다. 향·꽃 문화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출발해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됐고 그다음 역시 한국과 일본으로 확산됐다. 저자는 “차·향·꽃은 하나의 시공간에서 행해진 종합적인 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서 “차 문화가 흥했을 때 향과 꽃도 그 자리에 있었고 함께 커다란 시너지를 낳았다”고 말한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 황실 차문화가 절정을 이뤘고, 평민들도 황실의 차를 즐길 정도로 일반화됐다고 한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는 유난히 차를 사랑했다. 85세가 되던 해 아들에게 양위하겠다고 선언했다. 한 신하가 “나라에는 하루라도 황제가 없을 수 없다”고 만류하자 건륭제가 ”나는 차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청말 반세기 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자희태후(서태후)는 누구보다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 특히 자희태후가 외국 사절을 접견할 때 재스민차(말리화차)를 대접하고 선물하면서 재스민차는 세계 속으로 퍼져 나갔다. 19세기 초 중국의 차는 비단, 도자기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출품이었다. 영국은 중국에서 생산된 차의 5분의 1이나 사들였다. 대규모 무역적자에 고심하던 영국은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했고 1840년 아편전쟁으로 폭발했다. 그 후 영국은 인도 아삼 지역에 차밭을 조성해 엄청난 양의 차를 생산했다. 중국의 차 산업이 깊은 침체기를 겪는 계기였다.

한국의 차 문화는 고려 시대가 최고의 전성기였다. 무신 정권 이후 은거 생활을 하는 문인과 승려를 중심으로 차 문화가 확산됐다. 유교이념을 내세운 조선시대에는 억불 정책에 따라 차 문화도 침체기를 겪는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부흥기를 만든다.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를 마치고 강진을 떠날 때 제자 18명은 다신계(茶信契)라는 차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100여년간 이어졌다고 한다. 초의선사는 정약용을 통해 차와 인연을 맺었고, 다시 김정희는 초의선사와 교류하면서 격조 높은 차 문화에 빠져들었다. 제주도 유배 시절 김정희는 차를 매개로 많은 사람과 교유하고 질병의 고통과 외로움을 차로 달래면서 추사체를 완성했다.

일본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센노 리큐. 글항아리 제공

일본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차 문화를 오랜 세월에 걸쳐 현지화했고, 일본 고유의 문화를 접목해 중국과 한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전통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차 정신을 요약하는 ‘와비사비(侘寂)’ 개념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소박하고 조용한 것을 기조로 하면서 신중하고 순수한 것 속에서 깊이와 풍부함을 느끼는 마음을 나타낸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의식으로 확립됐다.

조선의 막사발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찻잔 ‘이도다완’. 글항아리 제공

저자는 내세에 대한 관심과 종교의식에서 출발한 향의 역사와 향로의 변천 과정도 살펴보고, 중국의 병화(甁花), 한국의 꽃꽂이, 일본의 이케바나 등 화기에 꽃을 담거나 꽂는 꽃 문화를 탐색한다. 3국의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각종 사료와 고고학 출토품을 토대로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각종 사진 자료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