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업 종사 기업 54% “경쟁국보다 과도한 규제”

입력 2024-12-26 01:11

“TSMC는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어 인재들이 근로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 개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육성하는 첨단전략산업만이라도 주 52시간 근무 제도의 예외를 적용해 주었으면 합니다.”(반도체 기업 A사)

“채혈기(의료기기)와 혈당측정 진단기기(진단의료기기)가 하나로 합쳐진 복합 제품을 개발했는데, 의료기기 인증과 진단의료기기 인증을 모두 받아야 해서 시간·비용 부담이 큽니다.”(바이오 기업 B사)

첨단산업 국가 대항전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배터리·바이오·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의 절반 이상이 우리 규제가 경쟁국이 비해 과도하다는 인식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BBCD(Battery·Bio·Chip·Display)’ 첨단기업 433개사 대상 ‘첨단전략산업 규제 체감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첨단산업 규제 수준이 경쟁국보다 ‘과도하다’는 응답률은 53.7%(매우 과도 14%·다소 과도 39.7%)에 달했다.

업종별로 경쟁국보다 규제가 강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배터리가 58.2%로 가장 높았다. 이어 바이오 56.4% 반도체 54.9% 디스플레이 45.5% 순이었다. 규제를 이행하는 데 따른 부담 여부에 대해선 10곳 중 7곳 이상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규제 이행이 수월하다고 응답한 기업은 2.7%에 불과했다.

향후 중점 규제 개선 분야로는 기술(29.6%) 인력(17.8%) 금융(14.7%) 환경(12.6%) 순으로 응답했다. 특히 연구·개발(R&D), 인증·검사 등 이른바 ‘기술 규제’와 '인력 규제' 애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A기업 관계자는 “인공지능(AI) 기반 혈당측정 및 진단이 가능한 채혈기를 개발했지만 복합 제품이라며 중복 인증을 거쳐야 했다”며 “이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B사 관계자는 “해외 경쟁사는 밤을 새워가며 R&D에 매진하는데 우리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발목이 잡혀있다”며 “첨단전략산업만이라도 근무시간 잔업·특근에 예외를 적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금융 규제’와 관련해 C기업 관계자는 “바이오산업 특성상 R&D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 창출까지 장기간이 필요한데,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폐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수치상 한계기업이란 이유만으로 국가 R&D 과제에 선정될 자격 자체가 안 되거나 참여에 제한을 받는다”고 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