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년을 연습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시장배 골프대회에 출전했는데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아무리 서울에서 가장 큰 대회라고 해도 본선에는 진출할 줄 알았는데 예선에서 떨어지다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사장님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완도 어르신들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다. 비참했다.
“니는 우리 학교를 빛내 주면 돼야.” 나를 믿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던 이사장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기대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졸업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처참하게 맛본 실패의 경험이 내게는 쓴 약이 됐다. 입술을 깨물고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패인을 분석했다. 결론은 실력 부족이었다.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 실력은 절대 훌륭하지 않아. 오히려 한참 뒤떨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실력을 키우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연습이다. 평소에도 연습량이 부족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을 인정하고 난 후 실력 부족은 연습량 부족이라는 생각에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렸다. 계속되는 연습에 골프 연습장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다.
다른 사람이 공 100개를 치면 나는 200개를 쳤다. 어떤 사람이 밤 10시까지 연습하면 나는 자정까지 연습하고, 아침 7시에 나오면 나는 6시에 나갔다. ‘한 시간 빨리, 한 시간 늦게. 연습량은 무조건 두 배’는 내 기준이 됐다. 그 이후로 어디를 가면 그곳에서 누가 가장 부지런한지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나 지독했던지 ‘경주가 연습할 때는 건들지도 마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물론 타향살이의 설움도 있었다. 프로로서 자리 잡기 전까지는 연습장과 협소한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할 일을 다 끝내고 연습을 해야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었다. 손님들 개인 지도를 하고 연습장 관리를 다 마치고 나면 늦은 밤이 됐고, 그때 연습을 하다 보니 주변 주택가에서 시끄럽다는 불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연습을 거르기라도 하면 다음 날 “그 청년 어디 아프대요. 어젯밤은 조용하던데”하고 물어오기도 했다.
난처한 상황이 생긴 적도 있다. 골프연습장 사장님 아들도 연습생 신분으로 같이 연습했는데 사람들이 나와 그 친구를 비교하면서 쑥덕거리니 눈치가 보인 것이다. 일이 고된 것은 견딜 수 있어도 마음이 힘든 것은 참기 어려웠다. 서글펐다.
“이 넓은 서울 땅에 내 몸 하나 누울 곳 없겠어.” 할 일을 다 하면서도 눈칫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나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다른 연습장을 찾아 번호들을 종이에 빼곡하게 적어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갔다. 옆에는 10원짜리 동전 50개를 쌓아놨다. 한 통에 20원이니 25통은 걸 수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