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택권 목사의 지성을 그리스도에게로] “그 바위는 옛날부터 거기 있었어…”

입력 2024-12-26 00:42

편견 혹은 고정관념은 대단히 무섭다. 큰 바위, 별로 모양새도 안 좋은 그 바위는 한 가족이 이사 왔을 때부터 집 앞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루는 부인이 잔디를 깎을 때 늘 방해가 돼 남편에게 “저 바위 파내 버리면 안 되나요” 하고 물었더니, 남편은 “안돼, 그 바위는 옛날부터 거기 있었어. 전 주인도 파서 옮기려고 했었나 봐”라고 답했다. 남편 말에 시아버지도 “그 바위는 상당히 깊이 박혀 있을 것이다. 너희 어머니 식구들도 남북전쟁 이후 줄곧 이곳에서 살아왔는데 이제껏 아무도 그것을 파내지 못했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혼자 이 집을 지키고 있던 그 부인은 틈을 내 집구석 여기저기 손보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한 군데씩 수리를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며 집을 새롭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 바위와 주변 잡초들이 잔디 위에 마치 부스럼 딱지처럼 솟아 있어서 보기 흉했다. 그래서 부인은 그 바위를 파내기로 작심했다. 헛간으로 가서 삽을 들고 나왔다. 조상들이 그 바위를 파내려다 실패했을 터이니 좀처럼 쉽지는 않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한번 도전하기로 했다. 마음을 다져 먹고 두툼한 작업화를 신고 외바퀴 손수레를 밀고 왔다. 종일 애쓰면 어느 정도 윤곽은 잡히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은 어처구니없이 빨리 끝났다. 바위는 단 5분 만에 윤곽이 드러났다. 40㎝ 정도밖에 박혀 있지 않았다. 그 바위는 손수레에 실려 옮겨졌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 집에서 살다 간 사람들마저 자기 조상들이 이 바위를 파내려고 했지만 결국 파내지 못했다고 믿고 살아왔다. 바위가 너무 깊이 박혀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는 ‘리더스다이제스트’ 1994년 5월호에 실린 이야기다. 이 고정관념과 확신은 모양이 비슷해서 헷갈리기 쉽다.

주님의 제자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만나 성경에 예언된 나사렛 예수를 소개하자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되물어왔다. 빌립은 “와서 보라”고 했다. 나다나엘 생각에 선지자로 태어나려면 나사렛 같은 시골에서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편견은 진실 앞에 무너졌다.

BC 545년 아람의 국방부 장관 나아만은 왕의 총애를 받는 이인자다. 불행히도 그는 한센병 환자다. 얼마 전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잡혀 온 어린 소녀를 통해 엘리사 선지자의 치료를 받으러 간 나아만에게 선지자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살이 깨끗하리라”고 했다. 그러자 나아만은 “내 생각에는 당신이 내게로 나와서 안수해 치료할 줄 알고 이곳까지 왔는데 요단강에서 씻으라니, 우리나라엔 강이 없어서 온 줄 아느냐”며 몹시 화를 내면서 돌아가려 했지만, 끝내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해 회복됐다. 많은 사람이 ‘내 생각’ 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왕하 5:1~19) 고정관념이란 실로 무서운 병이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라고 묻는 청년에게 예수님은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으니 그 계명들을 지키면 된다”고 했고, 그는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청년을 사랑하는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했다. 이 청년은 재물이 많아서 몹시 근심하며 떠났다. 그의 구원론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편견은 “마음에서 이미 판단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고 말한다.

편견, 고집, 고정관념 등 교만한 생각을 물리쳐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한다.(고후 10:5)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항하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모두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야 한다.

림택권 목사 (웨이크신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