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수첩에서 언급된 ‘백령도 작전’ 내용은 정치인 등 이른바 ‘수거 대상’을 겨냥한 실행 계획이라는 의혹을 받는다. 이 작전은 정치인 등을 체포해 제거하는 동시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북한 공격을 유도하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수사 당국은 실제로 작전 계획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윗선’으로 보고됐는지 파악할 계획이다.
수사 당국은 노 전 사령관이 수첩에 주요 인사 체포부터 구금, 수거 및 사살까지의 밑그림을 적어 놨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반도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 NLL에서 북한 도발 상황을 연출해 계엄 실행 및 유지 동력을 키우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2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 확보한 노 전 사령관 수첩에는 비상계엄과 관련해 ‘국회 봉쇄’라는 표현이 적혀 있다. 수첩에는 정치인 등이 ‘수거 대상’으로 표현됐고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일부 대상자의 실명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첩에는 백령도 해상 작전 계획으로 보이는 단어들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당국은 수거 대상을 체포한 뒤 배를 통해 백령도로 보내는 과정에서 사살한다는 취지의 내용 등에 대해 파악 중이다. 60~70쪽 분량의 손바닥 크기 수첩에는 ‘롯데리아 회동’ 당시 노 전 사령관이 메모한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단어가 산발적으로 적혀 있다.
특히 ‘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표현이 적혀 있는데, 군 당국이 계엄 요건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거나 오물 풍선 원점 타격을 지시하는 등 국지전을 유도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상계엄 명분을 위해 북한 도발 등의 작전이 고려됐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계엄 계획 단계에서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 6여단이나 서해 NLL을 맡은 평택 해군 2함대와의 협조 요청 문건 등이 발견될 경우 이 같은 주장이 힘을 받을 전망이다.
민주당의 한 국방위원은 “계엄 선포도 중요하지만 지속을 위한 명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암암리에 점조직들을 동원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했다. 다른 국방위원은 “비상계엄의 대의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북한 소행으로 하는 자작극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특정인을 납치·사살하기 위해 NLL에서 도발을 유도하는 ‘시나리오’는 망상에 가깝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NLL 일대에 남북 간 완충 지역을 만든 9·19 군사합의 과정에 참여했던 김도균 전 수방사령관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아군 레이더를 피해야 하는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군은 NLL 일대에서 재개된 포사격 훈련이 대남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서해상의 대규모 훈련은 9·19 합의 효력정지 이후 계획된 정례적 훈련을 실시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상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서해 NLL이 가장 안정적으로 관리됐던 해”라고 강조했다.
박재현 이택현 박장군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