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차세대 열관리 시스템 ‘액침냉각’ 기술 확보” 사활

입력 2024-12-25 00:45

인공지능(AI) 빅테크 기업 구글이 1년 동안 쓰는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구글은 지난 7월 발표한 ‘2024 환경 보고서’에서 지난해 약 240억ℓ의 물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남서부 지역의 골프장 43개를 1년 동안 운영하는 데 필요한 양과 같다. 구글은 “2022년에 비해 물 소비량이 14% 증가했으며, 이는 주로 데이터센터의 냉각 수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연구진은 지난해 발표한 ‘AI를 덜 갈증 나게’ 연구에서 “챗GPT 같은 대규모 AI 모델이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2027년에는 전 세계 데이터 센터의 연간 물 사용량이 42억~66억㎥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영국 전체 연간 물 사용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다. 챗GPT4를 사용해 100개 단어를 생성할 때마다 최대 1.4ℓ의 물이 소모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액침 냉각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차세대 열관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액침 냉각은 데이터센터, 전자제품, 배터리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어하기 위해 장비를 특수 냉각유에 담그는 방식이다. 높은 열 전도성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발열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기름이나 특수한 액체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물 사용을 줄이는 동시에 전력 소비 또한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마켓앤마켓은 지난해 4억 달러(약 5839억원) 규모였던 글로벌 액침 냉각 시장이 2031년에는 21억 달러(약 3조655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액침 냉각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9일 액침 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로 세계 최대 액침 냉각 시스템 기업 GRC의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했다. GRC의 일렉트로세이프 인증은 아직 공인 제품 규격이 미흡한 액침 냉각 전용 윤활유 시장에서 가장 신뢰성 높은 지표로 평가받는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국내 데이터센터 업체와의 실증 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쓰오일은 지난 10월 인화점이 250℃에 달하는 고인화점 액침 냉각유 ‘에쓰오일 e-쿨링 솔루션’을 출시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액침 냉각유는 데이터센터는 물론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급성장하는 미래 산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며 “향후 여러 산업에 걸쳐 열 관리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윤활유 자회사인 SK엔무브를 앞세워 액침 냉각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SK엔무브는 액침 냉각 시스템의 표준화를 위한 기술 개발과 자체 개발한 냉각유의 성능 인증을 진행 중”이라며 “데이터센터 외 다양한 분야에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그룹 계열사 및 외부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