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이른 아침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번스예배실 앞이 청년들로 북적였다. 병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서울 창천감리교회(장석주 목사) 세브란스봉사단(세봉) 봉사자들이 ‘청년 산타’로 변신하기 위해 빨간색 망토를 입고 하얀 턱수염을 붙이고 있었다. 이날 이들은 보름 가까이 어린 환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확인하고 캐럴 연습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환자복을 입고 유모차에 앉은 어린 환자들이 보호자와 함께 예배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의 유모차에는 수액과 영양제, 산소포화도 측정기, 가래 흡입기 등이 매달려 있었다. 10여명의 세봉 봉사자들은 환자와 보호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재빠르게 환자의 유모차 이동을 도왔다. 봉사자들이 율동과 찬양을 시작하자 어린 환자들은 상체나 발을 흔들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봉사자 장현아(27)씨는 “아픈 몸이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기쁘게 찬양하는 아이들과 순수한 눈빛으로 율동을 따라 하는 부모님을 보고 도리어 은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예배는 1시간 남짓 진행됐다.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예배 도중 보호자들은 자녀에게 주사기를 이용해 약을 주거나 흡입기로 가래를 빼줬다. 치료 시간이 돼 예배 중 병실로 이동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어린이병원 원목 송성광(46) 목사는 “이들에게 예배란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긴 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녀를 유모차에 옮기고 약품과 물품을 챙긴 뒤 링거와 영양제 등 주사약을 달고 예배당에 오는 이들에게 예배의 문턱은 높다”며 “그런데도 예배에 오는 이들을 보며 그 간절한 마음과 정성을 느끼게 돼 더욱 기도하게 된다”고 밝혔다.
예배가 끝나자 봉사자들은 “메리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입니다”라고 성탄 인사를 전했다. 그들의 두 손엔 창천감리교회 교인들과 함께 준비한 선물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이들은 일일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선물을 전하고 예수 탄생의 기쁨을 전했다.
이날 기자도 망토를 입고 선물 배달을 거들었다. 양말과 목도리, 작은 인형과 간식 꾸러미 등이 담긴 선물을 받자 굳어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얼마 전 뇌종양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이선우(가명·12) 어린이도 기자가 전한 선물을 받고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들은 봉사를 시작한 지 어느덧 15년이 됐다고 전했다. 어린이병원과 청년들의 인연은 처음엔 단순한 선물 전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매주 어린이병원을 찾아 어린이 환자들을 만나는 정식 봉사단이 됐다.
강찬우(34) 세봉 총무는 “어린이병원 봉사를 마친 청년들은 교회로 돌아가 청년 예배에 참석하는데 여기서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어린 환우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며 “봉사의 현장에선 아픈 이들을 돌보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