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17) 골프연습장 허드렛일 자청… 진심 통해 사장님께 신임

입력 2024-12-25 03:03
최경주 장로가 2020년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블랑 워윅 힐스 컨트리클럽에서 개막한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 앨리 챌린지 2라운드 11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때부터는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연습 외에 해야 할 일이 늘어난 것이다. 수산고 기계과 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도 있었다. 골프연습장에는 멀리 나가는 공을 막기 위해 그물망이 설치돼 있었다. 멀리 나간 공을 가져오기 위해 철탑을 올라가기도, 찢어진 그물망을 메꾸기도 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뭐 이런 놈이 있나’ 싶으면서도 나를 신임하게 됐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연습을 늦게까지 해도 넘어가 주셨다.

영업이 끝나면 연습장을 쭉 한 바퀴 돌면서 공이 빠져나갈 만한 구멍 같은 곳이 없이 없나 살피고 일일이 다 꿰맸다. 당시 창고에는 100여개의 클럽이 있었는데 딱 보면 자주 오는 사람, 가끔 오는 사람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었다. 자주 오는 손님의 클럽은 일부러 앞쪽에 두고, 그렇지 않은 손님의 클럽은 뒤쪽에 놔뒀다. 또 손님의 골프클럽을 정리하면서 더럽거나 정비가 안 된 골프채가 보이면 다 닦아주기도 했다.

다음 날 연습장을 찾은 손님이 골프채를 꺼내면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다. “아니 누가 자꾸 내 채를 닦아 놓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예요.” “아 그거 최군이 닦아 놓은 겁니다.” 사람들은 고향인 완도와 성 ‘최’씨를 붙여 ‘완도 최’라고 불렀다. 어른들의 애칭인 셈이었다. 나도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존중받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자네가 내 채를 닦았는가.” “네. 옛날에 완도에서 공칠 때 채가 지저분하면 공도 지저분하게 간다고 배웠당게요. 이렇게 잘 닦아놓으면 마음도 정신도 채도 깨끗하니까 1%라도 잘 맞을 확률이 높아지지요. 일거양득이지요.” “허허, 이놈 봐라.” 감동을 한 손님은 수고했다고 용돈을 주셨다.

서울도 완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향에서 손님의 골프화 쇠징을 갈아주고, 골프공을 싸게 주고 했던 터라 이때의 경험을 그대로 살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손님을 진심으로 대했다. 과거 경험을 살려 매일 저녁 손님들의 골프화 뒤꿈치를 갈아줬다. 조금만 상해도 정비해줬다. 처음에는 ‘이놈이 나한테 뭘 바라나’ 했던 어르신도 내 진심을 깨닫고는 마음을 차츰 열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저기요, 누가 내 신발 뒤꿈치를 갈아주는 거 같은데 도대체 누가 해주는 거예요.” “그거 최군이 밤마다 사무실에서 가는 거예요.” “아이고 이거 감동이네.” 이 손님은 나중에 나를 위한 골프채를 선물해주셨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