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약달러 정책에
생뚱 맞다고 비웃고 있지만
비트코인 전략자산화 계획은
만성 무역적자 해소뿐 아니라
금융질서 재편할 잠재력 있어
위기마다 환율 불안 시달리는
한국도 적극적 대응에 나서야
생뚱 맞다고 비웃고 있지만
비트코인 전략자산화 계획은
만성 무역적자 해소뿐 아니라
금융질서 재편할 잠재력 있어
위기마다 환율 불안 시달리는
한국도 적극적 대응에 나서야
경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약달러 정책에 코웃음을 친다. 달러 가치 평가절하를 통해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그의 의도가 기존 경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추진하는 보편관세 도입, 불법 이민자 추방, 대규모 감세 정책은 오히려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각국이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에 긴장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약달러 정책은 생뚱맞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부강한 미국의 상징이자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아 온 강달러 정책을 거스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 세계는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 따라 달러를 금에 고정(1달러=1.35온스)하는 금태환을 실시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과 대규모 복지 정책으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확대되면서, 달러 과잉 발행이 초래한 문제로 유럽 국가들이 금 지급을 요구하자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는 달러를 금 대신 신뢰라는 비물질적 기반에만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이후 강달러 정책이 굳어졌다.
게다가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숙명인 트리핀 딜레마에 시달려왔다. 달러가 국제적으로 원활히 통용되려면 미국은 무역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반대로 무역흑자는 글로벌 달러 부족을 초래해 국제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모순을 낳기 때문이다. 슈퍼 301조 등 한시적 무역보복 조치로 대응해 온 것도 이런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따라서 트럼프의 약달러 정책은 이러한 딜레마를 깨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암호화폐를 그 해결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11월 대선 공약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에 비트코인을 비축자산으로 포함시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놨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19일 비트코인을 비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백악관 암호화폐 차르’를 내정하는 등 트럼프의 거침없는 행보를 보건대 계획대로 밀고나갈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점은 연준 내에서조차 트럼프 정책에 수긍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견고했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카르텔에도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의 데이비드 안돌파토 연구원이 최근 암호화폐가 각국 외환보유고에 달러를 대체할 경우 달러 고갈 문제와 무역흑자·적자 간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옹호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일부 주 정부와 유럽 국가, 심지어 러시아까지 나서서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기대와 맞닿아 있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서방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핵심 도구로 삼으려 한다. 발행량이 2100만개로 고정된 비트코인을 금처럼 인플레 헤지 자산으로 용인하는 컨센서스와 제도적 보완책이 나온다면 물가관리와 국가채무 경감에 도움을 줄 잠재력이 충분하다.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암호화폐를 통한 외환 보유 다변화 등 전략적 활용은 환율 위험을 완화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은 투기 자산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지만, 그 이면에 막대한 전력과 컴퓨팅 파워가 집적된 산업 생태계가 존재한다. 미국의 주요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은 장기적인 전력 계약과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AI 훈련, 데이터 분석 등 미래 기술 산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인프라를 미국 주도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 글로벌 기술 패권을 장악하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암호화폐 실험은 기존 금융 질서와 기술 산업을 뒤흔들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암호화폐를 지나치게 규제적 시각에서만 바라보며, 기술적 이점엔 무관심한 듯 보인다. 상장지수펀드(ETF) 허용조차 미적거리는 한국의 태도는 과거 애플 아이폰 초기 수입을 3년 동안이나 금지하며 혁신의 기회를 놓쳤던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부터라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금융 및 기술 혁신 요소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볼 때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공공 데이터 관리, 스마트 계약 시스템 등은 암호화폐 기술이 가져다줄 긍정적 효과다. 트럼프의 실험이 금융시장과 기술 산업에 몰고 올 대변혁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