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스트롱맨은 아무나 하나

입력 2024-12-25 00:3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민주 국가의 스트롱맨(권위주의적 지도자)이다. 민주주의가 만개한 선진국에서 선거로 선출됐지만 리더십은 지독하게 권위주의적이다. 야당을 외부의 ‘적’으로 여겼고, 비판 언론은 적대시했다. 경쟁자에게 ‘공산주의자 카멀라’ 같은 이념적인 딱지, ‘IQ 70 바이든’ 같은 인격 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기성 언론보다 자신을 찬양하는 온라인 매체를 사랑했다. 2019년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2021년 의회 폭동 선동으로 재임 기간 두 차례나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조 바이든에게 패한 선거 결과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도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됐지만, 권력 운용 방식은 전두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언어는 트럼프만큼이나 원색적이다. 국회는 ‘범죄자 소굴’, 야당은 ‘종북 반국가세력’이라며 일거에 척결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취임 초 매일 아침 기자들 질문을 받겠다고 약속해놓고 몇 번 불편한 질문을 받더니 없애 버렸다. 기성 언론을 불신했고, 마음에 안 드는 언론사는 순방 비행기에 태우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좀스러웠다. 임기 절반이 지나자마자 난데없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트럼프와 윤 대통령은 데칼코마니처럼 빼닮은 것 같다. 윤 대통령 자신도 자신이 트럼프처럼 강력한 지도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스트롱맨이지만, 윤 대통령은 스트롱맨이 되려야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독재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스트롱맨이 되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자발적 지지가 필요하다. 권력자 개인의 카리스마와 매력에 열광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어야 법과 제도를 초월한 스트롱맨이 될 수 있다. 트럼프에겐 언제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추종자와 ‘샤이 트럼프’가 있다. 스트롱맨 트럼프를 다시 고용한 건 미국 국민이고 그 선택에 대한 영광도, 책임도 미국민이 지게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과 탄핵 이전에도 처참할 정도로 인기 없는 정치인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 25개국 지도자 중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15%로 꼴찌였다. 해당 조사는 심지어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보궐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모든 선거마다 판판이 깨졌다. 국민을 내내 피곤하게 한 아내의 처신에 대한 집착적 옹호, 극우 유튜버들이나 좋아할 홍범도 흉상 이전 같은 이념 놀음 몰두로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했다. 대선이 그의 정치 경력 중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일 테지만,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 후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싫어서 찍은 이들이 많았다. 그마저도 0.73% 포인트 차의 역대 최소 표차였다.

트럼프에겐 그를 위해 물불을 가르지 않고 의사당으로 쳐들어갈 지지층이 있지만, 윤 대통령에게 그런 지지자는 없다. 부끄러워하면서도 트럼프를 찍는 샤이 트럼프는 있지만, 부끄러워하면서까지 윤 대통령을 지지할 샤이 윤석열은 없다. 대통령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과 경찰마저도 그의 불법적 지시를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저항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일거에’ 스트롱맨이 되고 싶었겠지만, 국민은 허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힘없는 스트롱맨’ 같은 형용모순이 윤 대통령의 자화상이었다. ‘처단한다’ ‘척결한다’ 같은 시대착오적 어휘들이 가득한 윤 대통령의 연설은, 스트롱맨의 꿈을 이루지 못한 왜소한 권위주의자의 울분에 찬 허세였는지도 모르겠다.

임성수 워싱턴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