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사람 알기의 어려움

입력 2024-12-25 00:31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가 평소 이미지와 다른 행동으로 충격을 주는 일이 있다. 반듯하고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연예인이 성범죄를 저질러 충격을 주는가 하면,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였던 스타가 음주운전을 한 뒤 부정직한 행동을 저질러 실망감을 안겨주는 일도 있다. ‘설마 저 정도까지일 줄이야’라고 경악할 짓을 저지르는 정치인을 목격하기도 한다. 또 그와는 반대로 거칠고 다혈질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던 운동선수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따뜻하고 지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도 있다.

‘명심보감’에서는 ‘호랑이의 겉모습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의 얼굴은 알 수 있지만 마음은 알 수 없다’라고 했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순학(杜荀鶴)은 “바다는 마르면 끝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어도,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네(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라고 읊었다. 호랑이 무늬와 생김새는 누구나 보고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의 뼈를 어찌 알겠는가. 마찬가지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지만, 그 사람의 내면과 속내는 알 길이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듯이 인간의 마음은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겉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온전히 알기란 참 어렵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나 몇몇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그 사람’을 손쉽게 단정 짓곤 한다. 그 같은 확증편향이 집단심리로 퍼지면 실질을 왜곡하고 집단의 편견으로 굳어진다. 한때 ‘온달족’ ‘온달 콤플렉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온달은 고구려 때 사람으로 평강공주와 결혼해 뛰어난 장군이 된 인물이다. 온달은 평강공주와 결혼하기 전 집이 몹시 가난해 꾀죄죄한 몰골로 구걸하러 다녔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바보 온달’이라고 놀려댔다. 이 바보 온달 이미지가 계속 전해 내려와 오늘날엔 여자를 잘 만나 하루아침에 잘나가는 사람을 ‘온달족’이라 부르고, 한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화려하게 바꿔줄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의 심리를 ‘온달 콤플렉스’라 부르게 됐다.

하지만 온달의 실제 모습은 어리숙한 바보가 아니라 본래 마음이 맑고 머리가 좋으며 뛰어난 능력을 지닌 대장부였다. 온달은 아내 덕분에 출세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초라하고 어리숙한 모습만 보고 ‘바보 온달’로 부르게 된 것이 지금의 ‘온달 콤플렉스’라는 말로 이어졌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질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대중의 평가나 시선이 항상 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편견과 정보 때문에 좋은 사람을 욕하기도 하고, 겉모습에 현혹돼 속기도 한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안목을 지니려면 편견을 넘어 본질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되지 않을 때 보이는 태도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려준다.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공공시설에서의 질서,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을 대하는 자세, 어려운 누군가를 돕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판단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과 악한 점이 같이 있어서 약점을 드러낼 때도 있고 어느 상황에선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두 가지 사실이나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말로 그 사람을 손쉽게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의 전체를 오랫동안 살필 때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고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다. 바보라고 불리던 온달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평강공주의 통찰력처럼 사람을 볼 때는 겉모습 안에 감추어진 본질을 보고 또 그가 걸어온 길을 보자.

박수밀(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